금융위원회를 해체해 금융감독위원회로 바꾸고 금융감독원에서 금융소비자보호원을 분리하려던 금융감독체계 개편이 결국 백지화됐다. 애초부터 무리한 개편이었다. 일부 학자들과 정치인들이 감독체계 개편의 필요성을 역설했지만 설득력이 떨어졌고 대대적 개편을 추진할 타이밍은 더욱 아니었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감독체계 개편이 뭘 하겠다는 것인지, 왜 지금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게다가 정부가 내놓은 개편안은 감독을 정책에서 분리해 감독의 독립성을 높이고 실질적 소비자보호를 강화하자는 목표와는 거꾸로 간 엉뚱한 결론이었다. 실제로 실행됐다면 금융권에 상당한 혼란을 불러왔을 감독체계 개편 시도가 멈춘 것은 그래서 다행이다.
그렇다고 해서 금융감독체계 개편의 모든 취지가 잘못됐던 것은 아니다. 뻔히 예상되는 부작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지금, 이렇게 급하게, 파괴적 개편을 추진해선 안된다는 것일 뿐 현행 감독체계가 완벽하다고는 누구도 확언하지 못한다.
정부조직개편 대상에서 빠진 금융당국은 29일 자체적인 조직개편안을 발표했다. 모든 조직과 업무를 소비자보호 중심으로 전환하겠다는게 핵심이다. 금융소비자보호처를 총괄본부로 격상하고 각 금융권역 본부는 민원, 분쟁, 상품심사, 감독, 검사 등을 동일 임원 책임하에 원스톱으로 처리할 수 있는 조직 개편을 추진한다. 아침엔 금융위원장과 금감원장이 긴급 회의를 했고 오후엔 금감원 직원 수백명이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찬진 금감원장이 결의대회에서 임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는 인상적이었다. A4 7장의 발표문엔 그동안 소비자보호 업무에 대한 솔직한 반성과 앞으로 어떻게 강화해 나갈 것인지가 빼곡히 들어 있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대목은 정작 소비자보호와는 관련 없는 마지막 3단락이었다. '감독행정 편의주의나 권한의 오남용이 없었는지 돌아보자', '금융사에 일방적 지시나 제재가 아닌 감독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마인드로 접근하자', '감독권의 행사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장치와 역량을 갖추자'는 부분이다.
감독체계 개편이 한창 논의되고 있을 때 금융당국은 금융권의 침묵에 서운(?)해 했다. 반대 여론에 힘을 보태주길 기대했지만 금융권은 새 정부 눈치 보느라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개별 금융회사는 물론 각 금융업권을 대변하는 협회도, 금융인들을 지켜야 할 노조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금감원 직원들이 5대 은행 정문 앞에서 '감독기관 두배, 업무부담 두배'라고 쓴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기까지 했다. 금융은 규제산업이다. 규제 시스템에 당장 큰 변화가 닥치는데도 자신들의 의견 한번 제대로 내지 않는 금융권에 대한 항의였다.
금융권의 침묵은 비겁했지만 그렇다고 비겁함으로만 몰아붙일 일일까 생각한다. 정부의 결정에 토를 달지 않도록 길들여왔던 곳이 정작 금융당국 아니었나. 금융당국이 그동안 보여왔던 감독, 검사, 제재 방식에 대한 비판이 그들의 침묵에 녹아 있는 것은 아닐까.
금융당국이 제대로된 의견수렴도 없는 졸속적인 감독체계 개편을 비판하자 당장 금융권에선 금융당국은 그렇게 의견수렴을 잘하고 검사와 제재 대상자의 항변을 잘 들었느냐고 되묻는다. 금감원의 공공기관 지정은 금융감독의 독립성을 훼손한다고 주장하자 금융권에선 정권의 눈치를 보며 시장원리를 무시한 관치를 하지 않았느냐고 따진다. 또 정권에 밑보인 금융사와 CEO를 표적 검사하고 결론을 정해둔 제재를 한 적은 없었냐고, 당국의 권위에 도전했다는 이유로 금융사와 임직원들의 생존을 흔든 적이 없었는지 돌아보라고 냉소를 보낸다.
정권 교체 후 금감원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이유가 과거 정부 때 금감원이 보였던 도를 넘어선 행태의 업보라는 것을 금융당국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금감원장의 오늘 발언은 이에 대한 자성일 것으로 믿는다. 올해도 임기만료를 앞두고 있는 CEO들이 정권과 당국의 눈치를 보며 긴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