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그림이 좋잖아요.' 한 스타트업 행사장에서 만났던 정치권 관계자는 최근 정치인들의 스타트업 '러브콜'에 대해 한 마디로 이렇게 평했다. 스타트업 업계가 정치권의 새로운 공략지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 전통시장이 정치인들의 단골 방문 코스였다면, 최근에는 스타트업들이 모인 장소에 얼굴 도장을 찍는 모습이다.
정치권의 러브콜은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김부경 국무총리는 광복절을 앞두고 서울 강남구 창업가거리 내 '팁스타운'을 찾아 두 시간여 동안 청년·여성 스타트업 대표들을 만났다. 한 달 전에는 같은 장소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스타트업 대표와 간담회를 가졌다. 윤 총장은 이어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도 스타트업 대표들을 대면했다. 이곳엔 앞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도 들렀다. 비슷한 시기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서울 마포구 '프론트원'에서 간담회를 열었다. 같은 당 소속 강훈식 의원은 매달 개별 스타트업 사업장을 찾아가는 현장 방문 일정을 진행하고 있다.
정치인들에게 스타트업 업계는 요즘말로 '힙한' 곳이다. 창업·일자리 등 경제적인 측면뿐 아니라 청년·여성 이슈까지 포괄적으로 다룰 수 있다. 쿠팡, 배달의민족 등 성공적인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비상장사) 사례가 나오면서 화제성도 커졌다. 이미 국내 스타트업 등 벤처기업의 정규직 종사자 수는 80만명에 달한다. 삼성,현대 등 4대 그룹 고용인원(66만8000명)보다도 많다. 무엇보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 스타트업들과 혁신적인 이미지를 만들기도 좋다. 그림이 된다는 말에는 이런 의미들이 함축적으로 담겨있다.
정치인들의 쏟아지는 관심에 정작 스타트업들은 속앓이를 하고 있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정치인 방문이나 간담회 연락이 오면 없던 일정을 만들어서라도 피한다고 귀띔했다. 예전에 몇 번이나 정치인 행사에 참여해 규제 개혁과 지원 약속을 들었지만, 정작 달라지는 부분은 없다는 이유에서다. 행사를 준비하는데 빼앗기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차라리 안 왔으면 좋겠다고 하는 하소연이 나올 지경이다. 스타트업의 주 52시간 근무를 걱정할 게 아니다. 정작 그들한테서 부족한 시간마저 뺐는 게 누구인지 돌이켜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