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9월부터 시행되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하 김영란법)'은 적용 대상인 공무원과 언론사 종사자, 교사 외에 기업에도 '뜨거운 감자'다.
정부 부처나 유관 공공기관 등을 상대로 한 대관업무와 대외활동이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어서다. 본연의 기업 활동인 마케팅과 홍보업무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언론 행사를 통한 제품 홍보나 새 제품 출시회 등 기업활동에 필요한 업무 방식이 바뀔 수 있다.
한 대기업 임원은 "김영란법이 기업들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현재 법안(시행령)대로 적용 대상과 기준 등이 시행되면 기업 활동의 패러다임이 바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김영란법에 대해 가장 염려하는 건 통상적인 업무가 '위법'으로 규정돼 기업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례로 자동차업계는 판매의 기본인 마케팅에 비상이 걸렸다. 차업계는 신차를 알리기 위해 진행하는 출시 행사나 시승회 등 언론사를 상대로 한 기업 활동이 김영란법에 저촉되는지 모호하다고 지적한다.
김영란법은 '직무와 관련된 공식적인 행사에서 주최자가 참석자에게 통상적인 범위에서 일률적으로 제공하는 교통, 숙박, 음식물 등의 금품 등'은 예외로 인정하고 있지만 시행 후 실제 예외가 될지는 확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행사 자체가 가능한지 여부도 모호하고 기업이 제공하는 취재편의를 어디까지 봐야할지도 논란이 될 가능성이 있지만 책임있는 답변을 해주는 곳이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수입차 업계 관계자도 "국내에 진출한 수입차 브랜드들은 글로벌 본사에서 각국 언론을 초청해 진행하는 행사가 있는데 한국 기자들만 김영란법에 걸려 참석하지 않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했다.
기업 대관 업무도 마찬가지다. 국회와 청와대, 정부 부처 등을 상대로 대외 업무를 하는 대기업 대관 담당자들은 최대한 활동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한 대기업 대관업무 담당자는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연말까지는 최소한의 대외활동만 할 계획"이라며 "시행 후 시범케이스 처벌사례가 되지 않기 위해 지금도 3만원 이하 식사 약속만 잡는다"고 전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김영란법 시행에 따른 구체적인 대응 방안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한 기업이 부지기수다. 적용 대상에 대한 논란과 애매모호한 법 조항 탓에 8월 말로 예정된 헌법재판소의 '위헌심판' 결과를 일단 지켜보자는 기류가 강하다.
국내 5대그룹에 속한 한 임원은 "지금은 위헌 결정 여부가 초미의 관심"이라며 "실제 시행에 들어가도 법 조항의 모호함 탓에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기가 어려워 일단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법무법인 태평양이 '컴플라이언스(Compliance, 준법감시) 환경 변화와 대응 전략'을 주제로 연 세미나엔 350여명의 기업 관계자들이 몰리기도 했다. 세미나의 소주제인 '부정청탁방지법 시행에 따른 기업의 리스크와 행동 전략'이 가장 큰 관심사였다고 한다.
재계 관계자는 "개별 기업 차원에서 김영란법 대응 논의를 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어서 외부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국가권익위원회나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이 상황별 사례같은 구체적인 기준을 안내하는 책자라도 만들어 배포해줘야 한다는 얘기도 내부에서 나온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