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풀이 혁신을 게을리한다는 지적이 있다."(기자)
"(구체적인 근거는 설명하지 않은 채) 우리 제품은 업계 최고의 품질과 혁신성을 갖췄다. 가격 경쟁력만이 유일한 어려움이다."(월풀)
미국에서 판매 중인삼성전자·LG전자세탁기에 대해 세이프가드(긴급 수입제한조치) 청원을 제기한 월풀 측이 국내 언론에 처음으로 입을 열고 "두 회사의 저가공세로 인해 740억원을 투자한 세탁기 생산라인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월풀은 자사 제품이 삼성전자·LG전자 세탁기보다 월등히 앞선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정작 미국의 유력 소비자 전문매체들이 이달 두 회사의 세탁기를 '올해 최고의 모델'로 선정한 반면, 월풀 제품은 순위에 아예 포함시키지 않는 등 외면한 사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월풀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청원한 세이프가드 업무 책임자를 맡고 있는 CGCN그룹의 패트릭 오코너 씨는 25일 머니투데이와 전화 인터뷰에서 "삼성전자·LG전자의 세탁기 덤핑으로 월풀이 6500만 달러(약 737억원)를 투자한 대형 가정용 세탁기 라인에서 손실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오코너 씨는 "월풀이 '수백만 달러'의 손해를 봤다"고 언급했으나, 정확한 액수 등 구체적 수치는 제시하지 못한 채 사실상 모든 책임이 두 회사에 있다고만 강조했다.
CGCN그룹은 미국 워싱턴에 있는 로비회사로, 월풀 외에도 마이크로소프트(MS), 보잉, 21세기 폭스사, 마스터카드, 푸르덴셜 등 미국 주요 기업이 고객으로 있다.
월풀 본사에 '올 2분기에만 약 12%라는 글로벌 가전업계 최고 수준의 영업이익률을 올렸음에도 구체적으로 어떤 피해를 입었는가' 등을 묻는 이메일에 대해 월풀은 회신하지 않아 CGCN그룹과 인터뷰를 가졌다.
오코너 씨는 월풀의 혁신적인 제품, 품질은 해외시장에서도 인정받는다고 거듭 강조하며, 삼성전자·LG전자가 19일(현지시간) 열린 ITC 공청회 당시 발언한 '월풀은 소비자를 위한 혁신을 게을리한다'는 내용을 반박했다.
그의 월풀에 대한 평가와 달리 뉴욕타임스(NYT)의 계열사인 상품추천 사이트 '더 스위트홈'은 9일 '최우수 상품'(Our Pick)으로 LG전자 드럼세탁기(모델명 WM3770HWA)를 선정한데 이어 '디지털 트렌드' 역시 12일 삼성전자 플렉스워시 세탁기를 '최고 다기능 제품'(Best Overall Versatility)으로 뽑았다.
월풀 제품은 물론, 계열사 세탁기도 순위에서 빠졌다. 월풀의 주력 제품은 드럼(WFW75HEFW)과 전자동세탁기(WTW5000DW, WTW7000DW)로, 현지 시장에서 일반적인 제품으로 친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월풀 세탁기는 단지 용량이 크다는 것이 전부라고 할 정도로 특별한 기능이 없다"며 "삼성전자 '애드워시', LG전자 '트윈워시'와 나란히 비교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오코너 씨는 "월풀 제품의 유일한 어려움은 가격 경쟁력"이라면서 삼성전자·LG전자의 저가공세가 주된 원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현지에서 두 회사의 세탁기는 월풀 제품보다 비싸게 팔리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전자제품 유통업체 1위인 베스트 바이(Best Buy)에 따르면, 드럼세탁기 상위 3개 모델의 평균가는 LG전자가 1469.99달러(약 166만원)로 가장 비쌌으며, 삼성전자는 1316.66달러(약 148만원)로 집계됐다. 월풀은 1109.99달러(약 125만원)였다.
국내 가전업계는 미국 세탁기 시장에서 점유율이 갈수록 하락하고 있는 월풀이 삼성전자·LG전자를 경쟁에서 완전히 배제하기 위해 상식을 넘어서는 수준의 관세를 ITC에 요청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시장조사업체 트랙라인에 따르면, 삼성전자·LG전자의 2014년 미국 세탁기 점유율은 각각 10%, 13%에서 올 1분기 17%, 14%로 상승했다. 같은 기간 월풀은 41%에서 38%로 떨어졌다.
그는 월풀이 ITC에 두 회사의 세탁기와 부품에 50%의 관세를 매기도록 제안한 것에 대해서는 "삼성전자·LG전자가 베트남, 태국으로 생산라인을 이전하기 전에 중국에서 수입해온 세탁기에 대한 관세 책정 기준과 일치한다"며 "삼성전자에는 57~58%, LG전자는 39~40% 중반의 관세를 제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삼성전자·LG전자 제품은 미국 시장에서 프리미엄 세탁기라는 인식이 어느 정도 자리 잡았다"며 "두 회사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월풀이 사실상 터무니없는 수준의 관세를 정부에 호소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한편, ITC는 다음 달 21일 구제조치 방법·수준을 놓고 표결한 다음 12월4일까지 피해판정·구제조치권고 등을 담은 보고서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출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60일 이내에 세이프가드 발동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