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분야에 대한 투자를 지속 확대해 4차산업 혁명 시대를 주도해 나가겠습니다. 조직의 생각하는 방식, 일하는 방식에서도 '변화와 혁신'을 추진할 것입니다." (올해 정의선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신년사)
현대차그룹이 본격적인 '정의선 친정체제'에 돌입하면서 인재 채용 방식도 파격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반세기 가까이 재계에서 공고했던 '정기 공채' 시스템을 없애고, 올해부터 상시 채용으로 전환한다고 선포한 것이다. ICT(정보통신기술) 기업처럼 순발력 있게 인재를 적기 확보하겠다는 포석이다.
재계는 혁신적인 채용 실험이라며 호평을 내놓았다. 반면 취업 준비생들의 불안감도 높아졌다. 가뜩이나 좁은 취업 문이 더 좁아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다.
◇대졸 신입 '취업문' 줄어들까=현대·기아차는 14일 "상시공채로 바뀌더라도 정기공채 때와 채용 규모가 달라지는 건 아니다"라고 밝혔다. 기존처럼 적정 수준의 신입이 꾸준히 유입될 것이란 얘기다.
그동안 현대차그룹은 연간 1만명 안팎으로 추정되는 채용 인원을 공식 발표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신입 채용 축소가 주목적이었다면 굳이 채용 방식에 변화를 주지 않더라도 정기 공채에서 조절할 수 있었을 것이란 반론이 나온다.
이번 인력선발 방식의 변화는 우수 인재 선점·유지를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특히 R&D(연구개발) 등 핵심인재의 경우 정기 공채에서 뜻하지 않게 비선호 직무를 배정받을 경우 이탈하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신입 인재들이 원치 않는 직무를 배정받을 경우 더 나은 조건의 타 기업·업종으로 옮기는 분위기가 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인사 부서에서 해당 실무를 잘 아는 현업 부서로 채용 권한을 이양하는 셈이다.
◇HMAT 폐지 아냐…직무별 비중조절=대신 상시 공채가 전면적으로 이뤄질 경우 구조적으로 경력 비중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현대·기아차는 "지원자들이 불필요한 '스펙'(SPEC)을 쌓을 필요가 없다"고 장점을 설명했지만, 달리 말하면 해당 직무를 경험해 본 이들이 유리할 수 있다는 얘기로 풀이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현장에 바로 투입할 수 있고, 조직 적응 비용이 덜 드는 경력직을 선호하는 건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대세라는 지적이다.
그동안 대기업 정기 공채의 핵심은 '인적성검사'(HMAT)였다. 같은 날, 같은 시간 응시장에 함께 모여 마치 '수능'을 치르듯 해 '현대차 고시'라는 별칭까지 붙었다. 앞으로 HMAT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상시 채용 과정에서 해당 직무 담당자들의 판단에 따라 HMAT 비중을 조절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꾼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인적성 검사 개발을 하는데도 상당한 비용이 들고 기업 철학도 반영돼 있어 쉽게 없애진 못할 것"이라고 했다.
◇현대차 채용 혁신 스타트…다른 대기업은 현행 방안 유지=현대차그룹이 10대 대기업 중 처음으로 전면 상시 채용 스타트를 끊었다. 그동안 재계 1위였던 삼성그룹이 주로 채용 제도 변화를 주도하고, 다른 기업들이 따라가는 형국이었다면 이번엔 현대차그룹이 변화를 주도했다.
아직 타 그룹의 반응은 미온적이다. 삼성과 LG그룹은 계열사별로 진행해온 공채 방식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4대 그룹 중 유일하게 계열사별이 아닌 '그룹 공채'를 실시하고 있는 SK그룹도 올 3월 상반기 신입 공채를 예년과 같이 진행할 방침이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이 2014년 인문계 출신에 한해 상시 채용하겠다고 했다가 다시 돌아온 바 있다"며 "채용 실험의 성과를 지켜본 뒤 타 대기업들도 대열에 동참할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