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취임 후 첫 대외 이벤트인 한미 정상회담을 무사히 마쳤다. 전매특허인 사회적가치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철학이 주효했다. '의무'를 훌륭히 소화한 만큼 목소리에도 힘이 실릴 전망이다. 기업에 발등의 불인 무리한 규제법안 등에 현장의 목소리를 얼마나 반영할 수 있을지 관심이 높아진다.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최 회장은 문재인 대통령 방미 기간 현지 경제단체와 싱크탱크 리더 등을 연이어 만났다. 종횡무진 한국 경제 세일즈 행보였다. SK그룹은 물론 삼성전자, 현대차그룹 등이 총 44조원 대미 투자계획을 내놨다. 철학과 실리를 동시에 준비했다.
특히 미국 정재계는 최 회장의 ESG철학에 크게 공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 회장과 SK그룹은 국내서 ESG 행보에 가장 적극적이다. ESG의 포괄적 개념인 SV(사회적가치)를 일찌감치 주창하며 SK그룹 경영의 기본 이념으로 삼은게 바로 최 회장이다.
애플, 아마존 등으로 구성된 미 경제단체 BRT(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 조슈아 볼튼 회장과 화상 면담에선 "ESG 경영 정착이 기후변화, 소득격차, 인구감소의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동양에서 온 검은 눈의 경영자가 ESG철학을 설파한 것이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등이 소속된 ITI(미정보통신산업협회 제이슨 옥스먼 회장과 회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수소경제와 전기차 배터리 양산 등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고 양국 산업 경쟁력을 한 단계 성장시키자고 강조했다.
미국 유력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 전문가들과 대담하는 과정에서도 최 회장의 ESG철학이 빛을 발했다. 마침 미국 조지아주에 3조원 이상을, 포드와 합작을 통해 양사 합쳐 6조원을 투자하기로 한 것도 친환경 미래에너지 격인 배터리 사업이다. 철학과 투자가 일치한다.
방미에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한 최 회장이 경제계 대표 역할을 한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8년 문 대통령 방북 과정에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광모 LG회장 등과 함께 북한을 찾았다. 당시 경제인단의 맏형으로 다른 총수들을 살뜰히 챙기며 리더 역할을 했다.
방미 일정에까지 톡톡히 역할을 하며 힘을 썼다. 목소리에도 힘이 실릴 수 있는 구조다. 여대야소 정국에서 정권 후반부로 가며 재계 규제법안은 수위가 빠르게 높아진다. 반기업정서는 상대적으로 옅어지는데 일자리 창출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기업 옭죄기 법안이 연이어 국회 문턱을 넘고 있다.
국내외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중대재해처벌법이나 기업규제3법(상법·공정거래법·노조법 개정안) 등이 대표적이다. 법 시행을 앞두고 시행령 개정 등을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야 하지만 기업들의 산발적 호소는 영향력이 제한적이다. 경제단체 차원의 항의나 제안도 이뤄지고 있으나 전혀 먹혀들어가지 않는다.
최 회장 본인도 이를 잘 알고 있다. 방미 출국을 앞두고 국회를 방문해 국회의장과 여야 지도부를 만나 기업규제 완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 회장은 박병석 의장을 만나 "규제를 실제 풀었을때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관찰해서 필요한건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재계 한 고위 관계자는 "정권 후반으로 갈수록 최 회장이 각을 세울 일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며 "최 회장으로서는 청와대와 소통창구를 유지하면서 재계의 불만을 전달하고 반기업정서 해소에도 앞장서는 어려운 미션을 맡은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