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중소기업에 너무 먼 ESG

이재윤 기자
2021.08.13 03:30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최근 일고 있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 기조가 부담스러운 눈치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결국 돈 문제다. 친환경 생산시설을 갖추려면 비용이 드는데 빠듯한 살림살이에 여유가 없어서라는게 그들의 속내다. 기술 수준에 맞춰 해마다 수천, 수억원씩 투자를 하는 것도 벅찬데 친환경 설비까지 갖추라니 여간 부담스런게 아닌가보다.

ESG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끌어올리자는 취지는 알지만 생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먼나라 이야기다. 그야말로 '하루벌어 먹고 사는 사람에게 유기농 식탁을 차리라는 격'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중소기업이 처한 상황을 살펴보면 ESG가 얼마나 부담스러울지 짐작이 간다. 뿌리산업이라고 불리는 중소 제조업체들을 3D(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업종이라고 비하하고 외면한지는 오래다. 내국인이 떠난 자리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채우고 있지만 코로나19(COVID-19) 유행 지속으로 이마저도 수급이 어렵다. 최근에는 원자재 가격이 치솟고 내년도 최저임금은 9000원을 넘어서면서 원가부담도 커지고 있다.

뿌리산업이 고전하는 동안 반도체와 자동차와 조선 등 대기업들은 상반기 깜짝실적(어닝서프라이즈)을 기록했다. 분기매출 10조원, 분기영업이익 1조원을 넘어선 기업들도 부쩍 늘었다. ESG를 위한 투자여력은 충분한 상황이다.

중소기업의 ESG경영 기준을 대기업과 같은 잣대로 놓아선 안된다는 의견은 최근 연구보고서에서도 찾을 수 있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이 지난 8일 발표한 'ESG 확산이 중소기업에 미치는 영향 및 지원방향'에 따르면 ESG경영이 중소기업에겐 위험요인(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에게 ESG기준을 강요해 납품단가 등 또 다른 압박 수단으로 악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핵심은 중소기업에 적절한 ESG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결론이다.

만약 ESG가 경영의 필수요소라면 중소기업을 위한 대책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 친환경 설비도입에 따른 세금지원 방안과 원·하청구조에서 대기업의 상생방안도 필요하다. "일부러 환경을 파괴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든다"고 털어놓는 한 중소기업 대표의 얘기를 정책당국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규모에 관계없이 ESG를 기업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하는 통념이 누군가에겐 생존을 위협하는 압박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