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경기도 포천이나 강원도 철원에서 농민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갖는 농산물 중 하나가 사과입니다. 북부 지역에 사과 재배 면적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어요."
한현희 북부원예시험장장이 제주도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에서 올해 철원에 개소한 북부원예시험장의 책임자로 자리를 옮긴 후 "과수 재배 지역 북상을 확연히 체감한다"며 한 말이다. 북부원예시험장,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는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산하 연구기관들로, 기후변화에 따른 과수·채소 등 농작물 생산 변화에 대응한다.
북부원예시험장은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이 기후변화 따른 농산물 재배 대응을 위해 만든 기관 중 가장 북쪽에 있다. 과수 재배 지역의 북상이 워낙 빠르게 진행되다 보니 이 지역에 시험장을 지어야 할 필요가 높아진 게 설립 배경이다. 가장 대표적인 '북상' 농산물은 사과다.
통계청 재배면적 조사에 따르면 강원도의 사과 재배면적은 지난 2009년 199헥타르(ha)에서 올해 1951ha로 10배 가까이 늘었다. 2009년 강원도에서 난 사과는 전국 사과의 1%가 채 안 됐지만, 현재는 약 6%를 차지한다. 전통적으로 사과가 잘 자라던 대구·경북 지역은 전국 재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같은 기간 64%에서 58%로, 역시 사과로 유명한 충청북도는 14%에서 11%로 감소했다.
강원도가 사과 재배에 유리해진 건 전반적인 온난화의 영향이 가장 크지만 최근 심해진 열대야, 즉 여름 최저 기온 상승도 이유 중 하나다. 우리나라에서 많이 키우는 품종의 사과가 빨갛게 되고, 거봉 포도가 검붉은 색으로 변하는 데엔 일교차가 중요하다. 특히 사상 최장 열대야가 있었던 지난해엔 사과와 포도에 착색이 안 되는 경우가 잦았다.
이렇게 한반도 기온이 올라가며 여름철 최저기온이 상대적으로 더 낮은 강원도 등 북부 지역이 사과 재배에 유리한 면을 갖게 됐다. 농촌진흥청 '농업분야 기후변화 실태조사 및 영향 취약성 평가 종합보고서(2021)'에 따르면 강원도 지역에서 사과를 10ha 이상 재배하는 곳이 철원, 양구, 화천까지 확대됐다. 철원군 농업기술센터는 철원 특산물로 철원 오대쌀과 함께 사과를 내세우고 있다.
따뜻한 곳에서 잘 자라는 단감 역시 북상한 과일 중 하나다. 농촌진흥청의 같은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경상남도, 전라남도 등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재배되던 단감이 2020년에는 전라북도, 충청북도, 강원도 강릉으로까지 재배지역이 확대됐다. 경남의 단감 재배면적은 2010년 7025ha에서 10년 후 4739ha로 48% 감소했는데, 이는 같은 기간 전체 감소폭(28%)을 크게 상회한다.
인삼도 재배지역이 달라질 가능성이 높은 대표적 작물 중 하나다. 농촌진흥청은 기후학적인 인삼 재배 적합지역이 2006~2015년에는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분포했지만, 2018년에는 태백산맥 인근, 2020년에는 강원도의 중북북 내륙지역으로 변동했다고 분석했다. 인삼 역시 재배 지역이 북상한 거다.
망고, 바나나, 구아바 등 국내 아열대 과일 재배 면적도 2017년 109.2ha에서 2020년 171.3ha로 늘었다. 아열대기후대를 연중 8개월 이상이 10℃ 이상인 지역으로 정의할 경우, 우리나라에서 1981~2020년 30년 평균 아열대기후대는 전 국토의 6.7% 였으나, 2006~2015년 10년 평균 아열대기후대 면적은 9.8%로 확대됐고, 2020년에는 13.4%까지 늘어났다.
한현희 장장은 "과수나 채소는 최저 온도가 매우 중요하다"며 "올해는 상대적으로 낫지만 채소의 경우도 지난해 같은 고온이 오면 평년과 같은 시기에 파종해도 파종한지 얼마되지 않아 식물이 녹아버렸다는 농가가 많았다"고 했다. 그는 "사과 재배 지역 북상처럼 기후변화로 인해 작물의 재배 지역이 달라지고 있는만큼 북부지역에 적합한 과수, 채소에 대한 연구를 이어갈 것"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