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피니온 옆 TSMC…몸집 키우는 유럽 최대 반도체 허브

권다희 기자
2026.02.14 08:50

[인터뷰]파스칼 미조프 독일 작센주 경제진흥공사 반도체사업 프로젝트매니저

사진제공 = 주한독일상공회의소(KGCCI)

"반도체는 이제 경제와 지정학 전략의 중심에 있습니다. 유럽은 반도체 투자에 적합한 제도적 틀을 갖추려 하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의 글로벌 전략과 맞물리는 요소를 제공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독일 작센주 경제진흥공사(Saxony Trade & Invest)의 파스칼 미조프 반도체 사업 프로젝트매니저는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소재 한 호텔에서 가진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인공지능(AI)과 로봇, 전기차, 방위산업 등 모든 현대 기술이 반도체를 기반으로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공급망 위기를 겪은 유럽이 반도체를 전략 품목으로 재정의한 가운데 한국과의 제조 협력 지점이 넓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BMW·폭스바겐이 키운 반도체 생태계

독일 중부 작센주에는 유럽 최대 반도체·ICT(정보통신기술) 클러스터 '실리콘 작센(Silicon Saxony)'이 있다. 1960년대 반도체와 전자기기 기술이 일찌감치 자리 잡은 지역이다. 산업 기반 위에 형성된 이 클러스터는 현재 약 3600여개 기업, 8만 여명의 종사자를 보유하고 있다.

유럽 최대 반도체 기업인 인피니온을 포함해 글로벌파운드리·보쉬 등 주요 팹(fab·반도체 생산공장)이 드레스덴 북부에 밀집돼있다. 현재 유럽 생산 칩의 3분의 1이 이 지역에서 나온다. 반도체 관련 공급망과 연구기관의 밀도도 매우 높다.

이 지역이 전력 반도체 거점으로 자리 잡은 배경에는 독일의 자동차 산업이 있다. BMW와 폭스바겐, 포르쉐 등 완성차 업체들의 공장을 중심으로 공급망 기업들이 자연스럽게 둥지를 틀었다. 자동차 전동화와 전장 확대 흐름 속에서 전력반도체 수요가 폭증했고 산업 구조도 이에 맞춰 진화했다. 미조프 매니저는 "시장 수요가 산업을 형성했다"며 "자동차 기반 산업과 반도체 산업이 상호 발전해왔다"고 소개했다.

TSMC가 유럽 반도체 기업들과 합작해 짓는 EU 팹 'ESMC' 조감도/사진출처: 실리콘작센 웹페이지(https://silicon-saxony.de/)
EU 보조금, TSMC를 움직이다

이 클러스터는 2023년을 기점으로 한 단계 더 도약했다. 유럽연합(EU)이 코로나19 공급망 위기 대응 차원에서 도입한 'EU반도체법(Chips Act)'을 통해 대규모 보조금을 허용하면서, 대만 TSMC의 유럽 첫 팹이 드레스덴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앞서 2024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는 EU 국가 보조금 규정에 따라 TSMC가 인피니온과 보쉬, NPX와 드레스덴에 함께 짓는 ESMC의 공장 건설·운영 지원을 위한 독일 정부의 50억 유로(8조5000억원) 규모 지원안을 승인했다.

EU반도체법은 코로나19 당시 공급망 위기와 반도체 수급 불안정성에 대응하기 위해 유럽 내 반도체 생산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실제 생산능력을 확대해 유럽 내 반도체 생산 비중을 20%까지 끌어올리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현재 EU는 반도체법 예산 소진 후 올해 '반도체법 2.0'을 제안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생산 중심 지원에서 벗어나 공급망 전반으로 정책 범위를 확대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미조프 매니저는 "밀집된 공급망, 즉시 활용 가능한 부지, 산업 생태계가 결합된 점이 TSMC 투자 결정의 배경"이라고 강조했다. TSMC 공장은 2027년말 가동을 목표로 현재 건설 중이다. ESMC가 완전 가동되면 자동차·산업용 반도체에 주로 사용되는 공정 기술을 기반으로, 지름 30cm(12인치) 웨이퍼를 월 4만장 규모로 생산할 수 있게 된다.

독일 작센주 주요 산업 분야/그래픽=이지혜
"한국 기업, 유럽 공급망 빈틈 메울 수 있다"

에너지 집약 산업인 반도체 분야의 핵심 변수인 재생에너지와 순환경제를 실현하기 양호한 환경도 투자에 우호적인 요인으로 꼽았다. 미조프 매니저는 "작센은 재생에너지 비중이 비교적 높다"며 "기업들도 순환경제와 자원 효율화 공정을 도입하고 있다"고 전했다. 독일의 다른 지역 보다 저렴한 물가 역시 강점이다. 독일 대도시 기준 작센주 드레스덴의 임대료(8.43유로/㎡)는 뮌헨(18.72유로/㎡), 함부르크(12.11유로/㎡) 보다 저렴하다.

유럽 내 반도체 수요가 구조적으로 증가하면서 한국 기업의 유럽 시장 점유율도 커질 수 있으며, 보완적인 분야에서의 협력을 강화한다는게 미조프 그의 기대다. 미조프 매니저는 "한국은 메모리와 첨단 제조 역량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고 있고, 유럽은 자동차·로보틱스 등 응용 산업이 강하다"며 "양측이 공급망의 인접 영역에서 상호 보완적 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팹리스 설계 기업, 첨단 소재 기업, 반도체 특화 공정 기술 기업 등을 환영한다"면서 "엣지 AI, 엣지 컴퓨팅, 양자 컴퓨팅 등 미래 기술 분야에서도 유럽은 수요가 높지만 내부 역량이 제한적이라 한국 기업이 그 격차를 메울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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