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국내 전기차 판매량이 하이브리드 판매량을 넘어섰다. 연초부터 빠르게 확정된 정부 보조금과 전기차 판매업체들의 할인경쟁 등이 맞물린 영향이다. 최근 중동전쟁 여파로 고유가 흐름까지 겹치면서 장기화한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둔화)이 올해를 기점으로 끝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9일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전기차 판매량은 3만5766대로 전년 동기 대비 170% 증가했다. 국내 전기차 판매량은 지난 1월부터 세 자릿수 성장세를 이어간다.
반면 같은 기간에 하이브리드 판매량은 2만9112대로 전년 동기 대비 17.1% 줄었다. 전기차 판매량이 하이브리드를 넘어선 것은 2022년 10월 이후 3년4개월 만이다. 전기차 판매량은 2022년 9월 처음으로 하이브리드를 넘어섰지만 두 달 만에 다시 역전되며 캐즘이 장기간 이어졌다. 하지만 지난달 다시 판매량 역전에 성공하며 시장흐름이 바뀌는 변곡점이 될지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브랜드별 전기차 판매량은 기아가 1만4701대로 1위를 차지했다. 지난달 기아의 첫 PBV(목적기반차량) 'PV5'가 4242대가 판매되며 흥행한 영향이다. 기아는 'PV5'뿐 아니라 'EV3'(3150대) 'EV5'(2927대) 등 주요 전기차 모델이 판매 상위권에 오르며 판매성장세가 두드러졌다.
그 뒤를 총 8632대를 판매한 현대차가 이었다. 선두에서 '아이오닉 5'(2688대)가 전체 실적을 뒷받침했다. 여기에 '모델Y'(7015대)를 내세운 테슬라가 7869대의 판매량으로 3위를 기록했다. KG모빌리티(KGM)는 신형 '무쏘'의 EV(전기차) 모델을 기반으로 1077대를, 저가형 전기차를 앞세운 중국 BYD는 957대를 각각 판매했다.
정부가 연초부터 전기차 보조금을 확정한 데다 지난해 말부터 테슬라·현대차·기아 등 전기차 제조업체들이 앞다퉈 할인경쟁에 나서면서 시장이 달아오른 모습이다. 테슬라는 일찌감치 주요모델 가격을 최대 940만원가량 낮췄다. 현대차와 기아 역시 주요 전기차 차종을 대상으로 수백만 원 수준의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소비자 입장에선 내연기관차나 하이브리드 차량과의 가격차가 줄어들며 전기차 구매부담이 완화된 셈이다.
아울러 미국·이스라엘과 이란간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치솟아 전기차로 눈을 돌리는 구매자가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브렌트유 가격은 지난달 26일 배럴당 70.75달러에서 지난 6일 92.69달러까지 상승했다. 특히 이날 장중 100달러를 넘어서며 급등세를 보였다. 업계 안팎에선 유가상승이 장기화할 경우 내연기관 차량의 연료비 부담이 커지는 만큼 전기차 경제성이 부각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전기차의 소프트웨어 경쟁력도 눈에 띈다. 전기차는 차량제어 기능과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최신 소프트웨어 기반으로 구현돼 운전 편의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SDV(소프트웨어중심차량)의 중요성이 점차 커지는 가운데 전기차를 통해 이같은 최신기술을 이용할 수 있어서다.
테슬라가 지난해 말부터 감독형 FSD(완전자율주행) 기능을 일부 고가모델에 적용한 것도 이목을 끌었다. 아직 해당 기능이 '모델S' '모델X' 등 미국산 고가모델에 한정되긴 하지만 앞으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나 규제변화를 통해 보급형 모델로도 확대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올해를 시작으로 전기차 시장이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고 기대한다. 보조금정책이 비교적 이른 시점에 나왔고 완성차업체들의 가격경쟁이 이어지면서 소비자 접근성도 개선됐다. 이밖에 국내외 완성차업체들의 신형 전기차 출시가 이어질 경우 시장 분위기가 살아날 것으로 기대된다.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판매량이 다시 하이브리드를 제친 것은 시장흐름이 바뀌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며 "보조금정책과 가격인하 효과에 고유가 상황까지 맞물리면서 전기차 수요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질 가능성도 있다"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