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신탁방식 정비사업, 신탁사는 '불통' 주민들은 '답답'

허남이 기자
2026.03.13 17:23

최근 재개발·재건축 현장에서 '신탁방식 정비사업'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조합 내부 갈등이나 자금 조달 문제로 사업이 장기간 지연되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신탁방식은 사업 속도를 높일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신탁방식 정비사업이 확대될수록 현장에서는 새로운 문제점이 대두되고 있다.

주민이 통제할 수 없는 정비사업?

조합 방식의 정비사업에서는 조합 총회가 최고의 의결기구다. 조합장은 조합원이 선출하고, 임원 역시 조합원이 통제할 수 있다. 문제가 발생하면 총회를 통해 임원을 해임할 수도 있다. 사업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을 경우 주민들이 직접 의사결정을 바꿀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어 있는 셈이다.

하지만 신탁방식 정비사업에서는 의사결정 구조가 다르다. 사업의 실질적이고 전반적인 운영은 신탁사가 담당하게 되고 주민들은 신탁사와 정한 내부 시행규정에 따라 토지등소유자로서 몇 가지 중요한 사안에 관하여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는 것처럼 보이나, 신탁방식 정비사업에서 토지등소유자는 안건의 내용을 불문하고 '전체회의(총회) 소집권한' 자체가 없기 때문에 사실상 신탁사가 허락하는 안건에 관하여 가부 의사표현만 할 수 있는 구조이다.

특히 사업 도중에 사업성이 크게 악화되는 경우, 조합방식 정비사업에서는 토지등소유자가 사업 중단 및 해산을 결의할 수 있겠으나 신탁방식의 경우 토지등소유자의 그러한 의사가 반영될 길이 없다. 신탁사의 경우 약정에 따라 신탁보수를 받으면 그뿐이고 최종적으로 사업손실을 부담해야 하는 토지등소유자들은 끌려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권한은 가지되 책임은 없는 신탁사와 정비사업위원회?

조합 방식에서는 사업 추진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의 주체가 비교적 분명하고 유사시에는 집행부가 해임되기도 한다. 그러나 신탁방식 정비사업에서는 사업주체인 신탁사가 주민들 의사에 반하는 결정을 한다 해도 전체회의 소집권한 자체가 없는 토지등소유자들로서는 사실상 신탁사의 사업권을 박탈시키거나 신탁사를 교체할 방도가 없다.

특히 실무에서는 신탁사와 토지등소유자들의 가교 역할을 하는 '정비사업위원회'와 같은 조직이 구성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정비사업위원회는 상당한 권한을 행사하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는다. 즉, 조합방식에서 이사의 경우 임원으로서 업무상 책임을 져야 할 경우 해임의 대상이 되지만, 정비사업위원들은 그에 준하는 권한을 행사하면서도 도시정비법 및 관계법령상 해임 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해임 대상이 되지 못한다. 물론 신탁사가 정비사업위원에 관한 해임안건을 전체회의에 상정해 준다면 토지등소유자가 가부 의사를 표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구조적 한계 때문에 대부분의 정비사업위원회는 신탁사의 어용기구로 전락하게 된다.

제도의 미비 : 갈등 해결이 어려운 구조적 문제

정비사업은 본질적으로 많은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사업이다. 중요한 것은 갈등이 발생했을 때 이를 어떻게 관리하고 조정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어 있는가다. 신탁방식 정비사업은 사업 추진 속도 측면에서는 장점이 있지만, 주민 참여와 의사결정 구조가 충분히 설계되지 못했고 필요한 경우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 자체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갈등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에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글 법무법인 차율 이수희 대표 변호사

이수희 대표 변호사/사진제공=법무법인 차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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