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AI(인공지능)반도체의 양대 축인 AMD와 엔비디아의 CEO(최고경영자)가 이틀 연속 삼성전자와의 협력 의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AI반도체 경쟁의 핵심이 '연산'에서 '메모리·통합 시스템'으로 이동하면서 '종합반도체'(IDM·Integrated Device Manufacturer) 역량을 갖춘 삼성전자의 전략적 가치가 높아지면서다.
리사 수 AMD CEO는 18일 직접 경기 평택사업장을 찾아 삼성전자와 협력강화에 나섰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자사 주최 AI 콘퍼런스 'GTC 2026'에서 "생큐, 삼성"이라며 삼성전자와 협력을 재확인한 지 하루 만이다. 글로벌 GPU(그래픽처리장치) 시장점유율 1·2위 기업이 연이어 삼성과의 동맹을 강조한 것이다. 황 CEO와 수 CEO는 같은 대만계 미국인으로 5촌지간이지만 삼성과 협력에서 양보가 없는 모습이다.
수 CEO는 이날 전영현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장과 만나 '차세대 AI 메모리 및 컴퓨팅 기술협력 확대'를 골자로 한 MOU(업무협약)를 체결했다. 저녁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승지원에서 만찬을 하며 관련 논의를 최고경영진 차원으로 확대했다.
이번 만남은 20여년 전 GPU에 GDDR(그래픽D램)을 공급한 후 이어온 양사의 협력관계를 AI반도체 생태계 전반으로 확장한다는 의미가 있다. 양사는 지난해 삼성전자가 AI 가속기 'MI350'에 HBM3E(5세대 고대역폭메모리)를 공급하며 AI반도체 분야에서도 협력을 강화했다.
◇삼성, AMD에 HBM4 공급…연산보다 메모리 능력 중요
이번 협약을 통해 삼성전자는 AMD의 차세대 AI 가속기 '인스팅트(Instinct) MI455X' GPU에 HBM4를 공급한다. 아울러 양사는 AI데이터센터용 랙 단위 플랫폼 '헬리오스'(Helios)와 6세대 '에픽'(EPYC) 서버 CPU(중앙처리장치)에 적용되는 고성능 DDR5(더블데이터레이트5) 메모리 솔루션 분야에서도 협력을 확대한다.
업계에서는 수 CEO의 이번 방한을 차세대 HBM(HBM4) 확보를 위한 전략적 행보라고 본다. AI산업이 학습 중심에서 추론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GPU 성능 경쟁 역시 단순 연산능력을 넘어 메모리 대역폭과 시스템 최적화 중심으로 재편되기 때문이다.
대규모 AI모델을 안정적으로 구동하기 위해서는 초고속 메모리 대역폭이 필수다. 황 CEO는 "AI에는 단기·장기 메모리가 모두 필요하다"며 "엔비디아는 모든 메모리업체와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AI 가속기 시장에서 메모리 확보가 핵심 경쟁요소로 부상했음을 보여준다.
HBM뿐 아니라 고성능 D램의 중요성도 커졌다. 최근 AI 시스템에서는 HBM이 초고속 연산을 지원하는 반면 대규모 데이터 저장과 처리 용량은 D램이 담당하는 구조가 일반화됐다. 이에 따라 글로벌 빅테크(대형 IT기업)들 사이에서는 HBM과 함께 고용량 D램 확보 역시 핵심과제로 떠올랐다.
◇메모리 넘어 파운드리까지 '시스템 경쟁' 중요…삼성 유리한 고지
특히 양사의 협력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삼성전자의 'IDM' 경쟁력이다. 삼성전자는 HBM4에 최선단 1c D램과 함께 자사 파운드리의 4나노 공정으로 생산한 베이스다이(웨이퍼)를 적용했다. 베이스다이에 선단공정을 적용하면 전력효율을 높이고 신호지연을 줄일 수 있어 전체 시스템 성능이 향상된다. 이는 HBM 경쟁이 단순 메모리 기술을 넘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와 패키징까지 포함한 '시스템 경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메모리와 파운드리를 동시에 보유한 삼성전자가 구조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삼성전자가 확보한 3나노와 2나노 GAA(Gate All Around) 공정은 차세대 AI칩의 성능과 전력효율을 좌우할 핵심기술로 꼽힌다. 삼성 파운드리는 4나노 공정을 활용해 엔비디아의 차세대 AI칩 '그록3'을 생산 중이며 2나노 공정으로는 테슬라 AI칩을 생산할 예정이다.
AI반도체 역시 GPU와 CPU, 메모리, 네트워크, 스토리지가 결합한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으로 진화했다. 황 CEO 역시 이날 "추론은 하나의 칩 문제가 아니라 전체 컴퓨팅 시스템의 문제"라고 밝혔다. 이번 삼성전자와 AMD의 협력은 이러한 통합 중심 흐름을 포착할 수 있는 대표적 사례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최선단 메모리와 파운드리 기술을 동시에 보유한 사실상 유일한 종합반도체기업"이라며 "메모리와 파운드리, 패키징을 결합한 통합영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AI 시대에 성장잠재력이 크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