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덮친 대규모 정전은 유럽에서 20년만에 발생한 최악의 전력 사고로 기록됐다. 하지만 최근 공개된 공식 조사 결과는 '재생에너지가 너무 많아서 생긴 사고'라는 단순한 설명과는 거리가 멀다.
지난 20일(현지시간) 유럽 전력망 운영기관·규제기관이 함께 참여한 49명 전문가 패널의 공식 조사 결과인 '2025년 4월 28일 스페인·포르투갈 전력망 사고' 최종 보고서에 따르면 이번 정전은 하나의 원인이 아니라 여러 문제가 겹쳐 발생한 '복합 사고'였다. 특정 발전원이 아니라 전력망 시스템 전체가 동시에 흔들린 결과라는 의미다.
정전은 2025년 4월 28일 낮 12시 33분경 발생했다. 시작은 전압 상승이었다. 전기는 일정한 압력(전압)을 유지해야 안정적으로 흐르는데, 사고 당일 스페인 전력망에서는 이 전압이 빠르게 올라갔고 이를 제대로 잡지 못하면서 시스템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당시 상황은 여러 요인이 겹쳐 있었다. 봄철 낮이라 태양광 발전량이 늘었고, 전력이 특정 지역으로 몰리면서 흐름이 불안정해졌다. 여기에 전기가 들쭉날쭉 흔들리는 '진동' 현상까지 나타나면서 전압 변동은 더 커졌다.
문제는 이를 잡아야 할 장치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압이 오르면 이를 낮추는 기능이 즉각 작동해야 하지만 일부 설비는 수동 조작에 의존해 대응이 늦었고, 기존 발전소들도 기대만큼 전압을 안정시키지 못했다. 쉽게 말해 전압이 급격히 올라가는데도 '브레이크'가 제때 걸리지 않은 상황이었다.
결국 전압이 위험 수준에 이르자 발전소들이 보호장치에 따라 하나둘씩 꺼지기 시작했다. 태양광·풍력뿐 아니라 다양한 발전 설비가 대규모로 멈췄고, 지붕형 태양광 같은 소규모 설비도 함께 꺼졌다. 일부 설비는 안전 기준을 필요 이상으로 엄격하게 설정해 둔 탓에, 실제로는 아직 버틸 수 있는 상황인데도 먼저 자동으로 꺼지기도 했다.
발전 설비가 줄줄이 멈추자 전기 공급과 수요의 균형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전력망은 유럽 전체 전력망과 분리됐고, 불과 수십 초 만에 전체 시스템이 붕괴됐다. 실제로 12시 32분 이후 발전량 감소와 설비 정지가 이어진 뒤, 12시 33분 무렵 대정전으로 이어졌다.
겉으로 보면 재생에너지 발전이 많았던 날 벌어진 사고처럼 보이지만, 보고서는 이를 원인으로 보지 않는다. 핵심 원인은 "전압 제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재생에너지가 많아서가 아니라, 그 변화에 맞게 전력망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한게 문제였다는 설명이다.
대신 이 과정을 '연쇄 붕괴'로 분석한다. 전압이 올라가자 설비가 꺼지고, 설비가 나가면서 전압이 더 불안정해지고, 다시 다른 설비가 꺼지는 악순환이 짧은 시간 안에 반복됐다는 것이다. 이 단계에 들어서면서 전력망은 사실상 되돌리기 어려운 상태에 이르렀다.
반면 복구가 비교적 빠르게 이뤄졌다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외부 전력 없이 스스로 가동할 수 있는 발전소들이 먼저 전력을 공급하고, 전력망을 작은 구역으로 나눠 순차적으로 복구하는 방식이 활용됐다. 여기에 프랑스 등 인접 국가의 전력 지원도 더해지면서 포르투갈은 약 12시간, 스페인은 약 16시간 만에 송전망이 정상화됐다.
보고서는 이번 사고에 대해 "여러 요인이 결합된 결과이며 그중에서도 전압 제어 문제가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결론 내리고 있다. 특정 에너지의 문제가 아니라, 변화하는 전력 환경을 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한 데서 비롯된 사고라는 얘기다.
결국 이번 정전은 전력 시스템이 바뀌는 과정에서 드러난 구조적인 한계를 보여준다. 기존의 대형 발전소 중심 체계에서 재생에너지 중심의 분산형 구조로 전력 시스템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일부 운영 방식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는 점에서다.
이 사건은 전력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재생에너지 확대가 불가피한 흐름이라면, 이에 맞는 전력망 운영 체계를 갖추는 것이 앞으로의 핵심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