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띠, 묶어주며~ 어깨 걸고 일어서자."
우리나라 노동조합의 각종 투쟁 현장에서 가장 많이 불렸던 '연대투쟁가'의 가사다. 그만큼 노동운동에서 핵심은 '연대정신'으로 꼽혔다. 서로 처한 위치는 조금씩 다를 지라도 함께 싸우고 성과도 같이 나누자는게 노동운동의 근간이었다. 약자에 대한 배려와 사회적 책임의식 또한 비록 '명분'일지라도 신경을 썼다. 정당성을 내세우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였다.
최근 한 달 이상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뒤흔든 삼성전자 노조의 파업 으름장은 이같은 역대 노동운동의 공식을 완전히 무시했다. 협력업체·비정규직과 연대나 사회적 이슈와는 전혀 무관한 오직 성과급을 위한 투쟁이었다. 일반 국민으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연간 6억~7억원대의 성과급을, 그것도 매년 내놓으라는 '제도화' 투쟁이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의 파업권은 약자의 '최후 방어수단'이 아닌 국가경제를 뒤흔드는 '공격 수단'으로 작용했다. 실제 파업이 이뤄질 경우 1700여개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생존권이 위협받을 수 있지만 여기에 대한 배려는 보이지 않았다.
2026년 AI(인공지능)발 슈퍼사이클(초호황)과 함께 기존 노동운동의 공식이 사라진 새로운 투쟁이 등장한 것이다. 특징은 철저한 '사익 추구'다. 대한민국 단일 사업장 최대 노조가 보여준 드라마틱한 상징이다. 삼성전자 과반노조인 초기업노조는 7만명 이상의 조합원이 소속돼 있다.
이미 평균 연봉 1억5800만원(2025년 기준)을 받는 노동자들의 이런 요구에 전통적 노동운동에 대한 인식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이원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2026년 삼성전자 노조 파업 사태는 한국 노동운동사에 분기점이 될만한 사건"이라며 "자본과 노동에 대한 도덕적 이분법이 40~60대에 이르는 기성 세대의 저변에 깔린 문화적 코드였다면 이제 노동자가 '약자'라는 선입견에 대한 전 사회적인 재고가 일어나고 있다"고 직격했다.
삼성전자 노조는 일련의 투쟁 과정에서 국가 경제에 대한 책임감이나 여론을 의식하는 모습도 보여주지 않았다. 오히려 일부 지도부의 "삼성전자를 없애버리자" 식의 정제되지 않은 발언으로 논란만 커졌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대국민 담화에서 호소했듯 대한민국 수출의 22.8%, 전체 코스피 시가총액의 26%를 차지하는 기업의 직원들이지만 자신들의 파업이 불러올 후폭풍에 대한 고민은 없어보였다.
국민적 반감이 커진 것도 이 때문이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반도체 산업은 국가가 지원해왔는데 예를 들면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사회 복지에 투자하지 않고 이를 삼성전자에 준 것"이라며 "왜 과실은 전부 직원들이 가져가야 하느냐, 이건 너무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에만 삼성전자는 투자세액공제 등으로 면제받은 세금이 6조5500억원이 넘는다.
노조의 사익 추구 앞에서는 같은 직장 내 동료들 간에 연대조차 없었다. 최승호 초기업노조 위원장은 18일 온라인 대화방에서 완제품을 담당하는 DX(디바이스경험)부문을 배제하는 듯한 발언을 남겨 논란이 되고 있다. 최 위원장은 전날 저녁 텔레그램 '초기업 소통방'에서 "마무리되면 노조 분리 고민을 해봅시다"라며 "DX 솔직히 못해먹겠네요"라는 메시지를 남긴 것이 갈무리돼 직원들 사이에 퍼졌다. 최 위원장은 "집행부에 하소연하는 글을 잘못 올렸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직원들은 "DX부문 직원들로부터도 조합비를 받아가면서 DX부문을 대표하는 노조가 아니라고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재계 관계자는 "부문의 경계를 뛰어넘겠다는 뜻에서 '초기업' 노조를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반도체 성과급 협상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로 '노조 분리' 운운하며 동료들을 배제한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