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빠르게 치고 나오는 지금이야말로, 한국이 원천기술 지켜야 할 때"
살아있는 돼지 몸속에서 인간의 신장이 자란다. 공상과학 소설이 아니다. 김진회 바이오간솔루션 연구소장이 20년 넘게 매달려온 연구의 결론이다. 그가 개발한 면역결핍 돼지 플랫폼은 장기이식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기술로, 전 세계 이종 장기 연구자들이 주목하는 성과다.
그러나 이 세계 최초의 기술은 지금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 있다. 무균 시설 구축을 위한 자금 수혈이 시급하다. 김 소장을 만나 기술의 현주소와 앞으로의 계획을 들었다.
김 소장은 일본 교토대에서 동물생명공학 석·박사를 마친 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박사 후 연구원을 거쳐 건국대 줄기세포재생공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30년 가까이 이종 장기 연구에 전념해 왔다. 2002년 국내 최초 복제돼지를 탄생시켰을 때만 해도, 그것이 '사람 장기를 돼지에서 키운다'는 혁명적 플랫폼의 첫걸음이 될 줄은 몰랐다고 한다.
"돼지 장기는 크기와 생리 구조, 면역 체계가 사람과 80~90% 닮아있습니다. 이 유사성이 연구의 출발점이었어요. 처음엔 돼지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하는 '이종이식'이 목표였는데, 연구를 거듭할수록 더 큰 그림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큰 그림이란 이른바 '메디피그 플랫폼(Medipig Platform)'이다. 돼지 장기를 인간에게 이식하는 기존의 이종이식 개념을 넘어, 면역이 결핍된 돼지의 몸속에 환자 자신의 줄기세포를 주입해 '거부반응 제로의 인간 장기'를 배양해 내는 기술이다. 이른바 '살아있는 의료 공장'이다.
"돼지 자체의 장기 생성 유전자를 제거한 뒤 환자의 역분화줄기세포(iPSC)를 주입하면, 돼지 몸에서 사람의 신장, 간, 췌장이 자랍니다. 이 장기는 환자 본인의 세포에서 비롯된 것이니 이식해도 거부반응이 거의 없습니다. 이 기술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김 소장이 단순한 '뛰어난 연구자'를 넘어 업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갖는 이유는 원천기술 특허에 있다.
그는 이종간 장기이식 후 24시간 이내에 발생하는 '초급성거부반응'을 제어하는 기술(Gal-T knockout pig)을 개발한 데 이어, 이식 후 수 주 안에 나타나는 '급성 거부반응'을 제어하는 돼지(CMAH knockout)를 세계 최초로 생산해 냈다. CMAH 유전자 편집 기술 특허는 한국, 미국, 일본, 중국은 물론 유럽 9개국(네덜란드, 덴마크, 독일, 스웨덴, 스페인, 영국, 이탈리아, 폴란드, 프랑스)에 모두 등록됐다.
여기에 더해 T세포, B세포, NK세포 모두가 없는 '중증면역결핍돼지(IL2-GR knockout pigs)'도 세계 최초로 탄생시켰다. 이 면역결핍 돼지 원천기술(Rag2, IL2RG knockout)은 2013년 선제적으로 PCT(국제특허협력조약) 출원을 완료해 미국, 유럽, 중국에서 독점권을 확보했으며 유럽 특허는 2033년까지 권리가 보장된다.
"핵심 3종 유전자(CMAH, Rag2, IL2RG)를 편집한 기술에 대해 주요국 전체에 특허 장벽을 쌓아놨습니다. 타사가 이종이식에만 집중하는 동안, 우리는 인간 장기를 돼지 체내에서 배양하는 다음 패러다임의 원천 기술을 선점했습니다."
경쟁사들과의 기술 격차도 명확하다. 미국 eGenesis는 69개 유전자를 편집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과도한 유전자 조작으로 기술 불안정성이 지적된다. 또 다른 미국 기업 Revivicor는 10개 유전자 편집에 심장이식 임상 사례가 있지만 장기 생존에 한계를 보인다. 두 회사 모두 돼지 장기를 인간에게 이식하는 이종이식에만 머물며, 인간의 장기를 돼지 체내에서 배양하는 인간유래장기 생산기술은 갖추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이종장기 이식과 인간유래 장기 생산, 두 시장을 동시에 겨냥합니다. 이게 진짜 차이입니다."
메디피그 플랫폼의 활용 범위는 장기이식에 그치지 않는다. 암 치료와 신약 개발, 팬데믹 대응까지 이어지는 4개 파이프라인이 준비돼 있다.
첫째, 환자 맞춤형 암 예진(PDX Pig)이다. 면역결핍 돼지에 환자의 암세포를 직접 이식해 최적의 항암 치료법을 사전에 찾아내는 방식이다. 현재 임상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마우스(실험용 생쥐) 모델의 신약 개발 실패율이 95%에 달하는 반면, 면역결핍 돼지 모델을 활용하면 실패율을 5% 이내로 낮출 수 있다는 게 김 소장의 설명이다. 이는 돼지의 장기 크기와 생리학적 구조가 사람에 훨씬 더 가깝기 때문이다.
"마우스는 인간과 장기 크기와 면역체계가 근본적으로 달라서 암세포를 장기에 이식하지 못하고 피부에 삽입합니다. 당연히 실제 임상과 결과가 다를 수밖에 없어요. 돼지는 실제 장기에 이식해 테스트할 수 있습니다."
둘째, 인간 세포·항체 치료제의 대량생산이다. 인간화 돼지에 항원을 주입하면 마우스 한 마리에서 1~10명분의 항체를 얻는 것과 달리, 돼지 한 마리에서 5000~5만 명분의 항체 치료제를 생산할 수 있다. 팬데믹 상황에서 항체 치료제를 신속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유일한 플랫폼이다.
"코로나19 같은 팬데믹이 다시 오면 항체 치료제를 긴급히 대량 공급해야 합니다. 마우스 기반으로는 불가능한 속도와 양을 돼지 플랫폼으로 가능하게 합니다."
셋째, 환자 대체용 아바타(분신) 질환 모델이다. 인간 면역시스템을 탑재한 인간화 돼지를 만들면, 환자를 대신하는 아바타 동물로 신약의 효능과 부작용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넷째, 궁극의 목표인 인간 유래 장기 이식이다. 환자 본인의 줄기세포로 돼지 내에서 배양된 신장, 간, 췌장 등을 거부반응 없이 이식하는 것이다.
무균돼지 유지 비용 연 1억 5000만 원을 2년 넘게 내지 못해 결국 200억 원 가까운 나랏돈을 들여 키운 무균돼지들을 살처분한 직후, 중국에서 손이 뻗어왔다. 중국은 2010년대 중반부터 꾸준히 러브콜을 보냈다. 홍콩 투자자의 투자 계약이 사드 사태로 무산된 아픔도 있었지만, 한국에서 연구를 이어갈 길이 막히자 결국 칭다오대 해외 석학 교수로 초빙됐다. 하버드 메디컬스쿨, 예일대, 미주리대 등도 공동 연구를 제안했다.
"중국의 속도가 무섭습니다. 막대한 자금력에 다양한 임상을 빠르게 진행할 수 있는 환경까지 갖췄어요. 반면 한국은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인데 그 기술이 소비될 인프라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한국으로 돌아온 것은 원천기술이 중국에서 소비되는 것이 국가적 손실이라는 판단에서다.
"세계 최초로 급성 면역거부반응 제어 돼지와 중증면역결핍 돼지를 개발한 기술이 해외에서 활용되는 건 대한민국에 돌이키기 어려운 손실입니다. 우리 후학들이 이 기술 위에서 더 큰 연구를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재 바이오간솔루션은 경기도 의정부시 캠프카일(미군 반환 부지)을 무균 시설 부지로 협약하고 투자 유치를 추진 중이다. 면역결핍 돼지 100마리 규모의 무균 시설 구축에 150억~200억 원, 부지 매입까지 포함하면 약 400억 원이 필요하다.
글로벌 장기이식 시장은 2023년 177억 달러에서 2033년 44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면역결핍 돼지를 미니피그로 판매하는 것부터 시작해, 인간화 돼지(1억~5억 원), 환자 맞춤형 아바타 피그(50억~100억 원), 최종적으로 이종 장기와 인간유래장기 이식까지 단계적 수익 구조를 갖고 있다.
"무균 시설이 생기면 단순히 연구 공간이 생기는 게 아닙니다. 그 시설에 연구진이 모이고, 병원이 들어오고, 제약사가 실험을 의뢰하러 옵니다. 지역 바이오 생태계 전체를 바꿀 수 있는 앵커 시설이 됩니다."
플랫폼의 공공적 가치도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공식적으로 아직 전쟁 중인 나라입니다. 화학무기 공격에 대비해 대규모 항체 치료제를 긴급 생산할 수 있는 국가적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팬데믹 대비도 마찬가지예요. 이 플랫폼은 개인 기업의 수익 모델이 아니라 국가 보건 인프라의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
김 소장은 "지금은 장기이식을 받으려면 수십 년을 기다려야 한다"며" 전 세계 46개국에서 매일 평균 24명이 장기를 기다리다 사망하는 만큼 반드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언젠가는 긴급 상황에서 옷 갈아입듯이 세포를 바꿔 끼는 세상이 올 수 있다고 믿습니다. 개인의 생명을 구한다는 점도 의미가 크지만, 이건 국가적 시스템으로도 소중한 연구입니다. 개인적인 수익 목적은 하나도 없습니다. 보유하던 회사 지분도 모두 넘겼습니다. 마지막 목표는 오직 하나, 이 플랫폼을 통해 전 인류에게 유익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입니다."
김 소장은 현재 바이오간솔루션 연구소장으로서 투자 유치와 연구 재개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 바이오간솔루션(BiOrgan Solution)은 2019년 설립된 이종 장기 및 인간화 돼지 플랫폼 전문 기업으로, 메디피그 플랫폼을 통해 이종 장기 생산, 인간유래장기 생산, 맞춤형 암 예진, 세포·항체 치료제 대량생산 등 4개 파이프라인을 구축했다. CMAH, Rag2, IL2RG 유전자 편집 기술 특허를 한국, 미국, 일본, 중국, 유럽에 보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