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국내 제조기업들에게 '불가능한 미션'처럼 여겨졌던 RE100(사용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 달성 해법이 '논밭'에서 나올 가능성이 커졌다. 최근 '영농형 태양광'의 법적 근거가 마련됨에 따라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과 같이 경기도·충청권에 생산시설을 둔 전력다소비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전환 시나리오가 현실권에 들어왔다는 평가다.
31일 머니투데이 분석 결과 삼성전자가 국내 전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대체하기 위해 필요한 태양광 발전 설비 용량은 약 19.3GW(기가와트)로 추산된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공개한 2024년 국내 연간 전력 사용량 2만5111GWh(기가와트아워)에 국내 평균 일조시간(3.6시간)을 근거로, 1MW(메가와트) 설비당 연간 발전량을 약 1300MWh로 잡아 도출한 수치다.
삼성전자의 국내 전력 사용량은 막대하지만, 영농형 태양광 잠재량 대비로는 크지 않은 규모다. 한국환경연구원(KEI)이 국내 농지면적에 기반해 산출한 국내 영농형 태양광 총 잠재량(682GW)의 2.8%다. 이 수치 조차 삼성전자가 국내 사용 전력 전체를 오직 신규 태양광으로만 조달한다고 가정한 최대치다. 이미 재생에너지 전환을 마친 물량과 향후 육·해상 풍력이 분담할 몫까지 고려하면 실제 필요한 영농형 태양광 규모는 이보다 줄어든다.
영농형 태양광은 농지 위에 패널을 설치해 농사와 발전을 병행하는 방식이다. 일본·유럽·미국에서는 이미 상용화됐다. 작물의 수확량이 일부(벼농사 기준 약 10~30%) 감소하나 농가에 추가 소득을 제공하고 농지 훼손 없이 재생에너지를 확대할 수 있어 농촌·에너지 수요처의 이해관계를 함께 충족할 수 있는 선택지로 꼽힌다. 국내에서도 지난 4월7일에 관련법이 국회를 통과하며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
특히 국내 영농형 태양광 잠재량 중 극히 일부라도 발전설비로 구현되고 여기서 생산된 전력을 기업들이 구매(전력구매계약·PPA)하는 구조가 만들어지면, 농민·기업·국가에게 편익이 발생할 수 있다. 농민은 태양광 수익을 얻고 기업은 재생에너지를 확보하며 국가는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이행 가속화·에너지 안보 강화 효과를 얻게 된다는 얘기다.
정부도 영농형 태양광의 잠재력에 주목하고 있다. 이미 지난달 19일 발표한 '제1차 재생에너지 기본계획'에서 2030년까지 추가로 확보할 태양광 설비 56.2GW 가운데 11.1GW를 영농형·수상 태양광으로 조달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등 전력다소비 기업들의 핵심 생산 거점이 몰려 있는 경기도 인근 농지만 활용해도 전력 수급 문제가 유의미하게 해결될 수 있다(머니투데이 2월3일 보도 수도권 농지서 '기가급' 태양광 발전 가능하다)는 점에서 현실적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무엇보다 인근 농지에서 생산한 청정 전력을 반도체 라인에 공급할 수 있는 에너지 '지산지소(地産地消)'가 가능해지면, 비용과 시간이 상대적으로 크게 투입되는 장거리 송전선로 건설 없이 재생에너지 공급과 소비가 이뤄질 수 있다. 여기에 에너지저장장치(ESS)와 배전시설 등 인프라 투자가 적기에 병행될 경우 비용 효율적인 재생에너지 공급을 이룰 수 있는 실질적인 돌파구가 마련되는 셈이다.
국내 영농형 태양광 권위자인 정재학 영남대 화학공학부 교수는 "영농형 태양광의 압도적 잠재량을 고려할 때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기업들의 RE100 달성은 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며 "결국 관건은 시간과 의지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ESS 등에 대한 투자가 병행된다면 농촌과 기업이 공생하는 모델이 실현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