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COVID-19) 확산이 한창이던 3월4일 서울 중구 명동 신세계백화점 본점에는 긴 줄이 늘어섰다. 마스크를 사기 위한 줄이 아니었다. 에르메스 뷰티의 립스틱이 출시된 이 날 백화점 개점과 동시에 매장에 인파가 몰려들었다. 코로나19로 백화점 전체가 한산한 가운데, 에르메스 립스틱 인기 색상은 금세 동났다.
명품 브랜드가 틈새 시장까지 깊숙이 침투하면서 소품의 영역에서도 '신 소비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 스트레스로 공허해진 마음을 채울 수 있으면서 가격 면에서 부담스럽지 않은 '스몰 플렉스(FLEX)' 시장에 명품 업체들이 적극 진입해 작은 것 하나라도 비싼 수입제품을 쓰려는 풍조가 대중화됐다.
수천 만 원대 가방을 제작하는 프랑스 에르메스(Hermes)는 지난 3월 전 세계 35개국에서 '루즈 에르메스 컬렉션'을 출시하며 화장품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일찍부터 뷰티 시장에서 쏠쏠한 수익을 내던 샤넬·디올의 뒤를 이어 뒤늦게 뷰티 시장에서 '스몰 럭셔리' 전쟁에 합류한 것이다.
스몰 럭셔리란 자동차·의류·가방 등 대형 사치품 대신 화장품·식료품 등 작은 제품에서 소비의 만족을 얻는 트렌드를 말한다. 수입차·가방 등 고가 제품을 살 경제적 여유가 없거나 기분전환용으로 작지만 비싼 소품을 사는 경우다. 특히 경기가 좋지 않은 불황기에는 소비자들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스몰 럭셔리를 추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표 상품이 바로 립스틱이다.
백화점 1층 화장품 매장에 입점된 주요 명품화장품 립스틱 가격은 샤넬 루즈 알뤼르가 4만5000원, 입생로랑 루즈가 4만6000원, 루즈 디올 4만5000원, 구찌 뷰티 립스틱은 4만8000원이다. 에르메스는 훌쩍 높은 8만8000원으로 가격을 결정했다.
8만8000원은 기존 명품화장품 립스틱 가격의 2배 수준이지만 소비자들은 "에르메스를 가졌다"는 생각에 코로나19 와중에도 백화점에 줄 서길 마다하지 않았다.
서울 서초구에서 일하는 회사원 양승연씨(39)는 "에르메스 립스틱으로 에르메스에 처음 입문했다"며 "에르메스 특유의 오렌지 박스에 에르메스 로고가 들어간 리본으로 포장된 케이스에 들어있는 립스틱을 받으니 행복하다"고 말한다.
코로나19로 경기 하강이 계속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스몰 럭셔리 시장의 전망은 어둡지 않다고 봤다. 립스틱을 비롯한 스몰 럭셔리 품목은 불황기에 작은 지출로도 큰 심리적 만족을 준다는 점에서 더 잘 팔리는 경향이 있어서다.
◇플렉스(FLEX)=밀레니얼 세대 사이에서 '돈 자랑을 하다' '일시에 많은 돈을 쓰다'는 뜻으로 쓰이는 신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