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일 자정을 앞둔 시각. 대기업 식품사 임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갑자기 벌어진 일이라, 저희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 계엄령을 선포한 지 한 시간 가량 지난 상황이었다. 이 임원은 "아직까진 특별히 이상은 없다"면서도 사재기로 인한 제품 수급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수출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튿날 오전 4시쯤. 윤 대통령이 계엄 해제 담화를 발표하면서 다행히 마트로 달려가는 사재기 행렬은 없었다. 하지만 식품 기업들이 감당해야 할 경제적 타격은 이날부터 시작됐다. 원·달러 환율 상승은 식품 기업들에게는 심각한 악재다. 주요 기업들은 대책 마련에 나섰다.
# 같은 시각 지구 반대편. 한국과의 시차가 정확히 12시간 나는 남아메리카 파라과이의 수도 아순시온에선 식품 업계가 기다리던 희소식이 들려왔다.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 간 위원회(무형유산위원회)가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를 인류무형문화유산 목록에 올렸다.
장 담그기 문화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가 결정된 시각은 한국 시간으로 4일 오전 3시쯤. 국회에서 계엄 해제가 의결됐지만 윤 대통령의 해제 담화가 나오기 전이었다. 식품 업계와 정부가 2015년부터 장 담그기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작업에 돌입했고 10년 만에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지만, 한국에서 들려온 계엄령 소식에 빛이 바랬다. 오랜 기간 쌓아왔던 K푸드(한국 음식)에 대한 신뢰에도 금이 갔다.
# 식품은 대표적인 내수산업이지만 현재 주요 식품 기업들의 주 무대는 해외다. 지난달까지 라면·음료 등 국내 식품 기업들의 누적 수출액은 90억 5000만 달러(약 13조 원)으로 11월 말 기준 역대 최고다. '불닭볶음면'으로 K푸드 열풍을 주도하고 있는 삼양식품은 최근 식품 기업 중에선 처음 '7억 불 수출탑'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국의 정치적 불안정이 'K푸드 열풍'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느닺없는 계엄령으로 손상된 대외 신인도와 흔들린 K푸드의 신뢰를 회복하는 과제는 결국 우리 기업들의 몫으로 남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