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계엄령과 K푸드

이재윤 기자
2024.12.11 05:10
/사진=뉴스1

# 지난 3일 자정을 앞둔 시각. 대기업 식품사 임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갑자기 벌어진 일이라, 저희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 계엄령을 선포한 지 한 시간 가량 지난 상황이었다. 이 임원은 "아직까진 특별히 이상은 없다"면서도 사재기로 인한 제품 수급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수출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튿날 오전 4시쯤. 윤 대통령이 계엄 해제 담화를 발표하면서 다행히 마트로 달려가는 사재기 행렬은 없었다. 하지만 식품 기업들이 감당해야 할 경제적 타격은 이날부터 시작됐다. 원·달러 환율 상승은 식품 기업들에게는 심각한 악재다. 주요 기업들은 대책 마련에 나섰다.

# 같은 시각 지구 반대편. 한국과의 시차가 정확히 12시간 나는 남아메리카 파라과이의 수도 아순시온에선 식품 업계가 기다리던 희소식이 들려왔다.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 간 위원회(무형유산위원회)가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를 인류무형문화유산 목록에 올렸다.

장 담그기 문화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가 결정된 시각은 한국 시간으로 4일 오전 3시쯤. 국회에서 계엄 해제가 의결됐지만 윤 대통령의 해제 담화가 나오기 전이었다. 식품 업계와 정부가 2015년부터 장 담그기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작업에 돌입했고 10년 만에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지만, 한국에서 들려온 계엄령 소식에 빛이 바랬다. 오랜 기간 쌓아왔던 K푸드(한국 음식)에 대한 신뢰에도 금이 갔다.

# 식품은 대표적인 내수산업이지만 현재 주요 식품 기업들의 주 무대는 해외다. 지난달까지 라면·음료 등 국내 식품 기업들의 누적 수출액은 90억 5000만 달러(약 13조 원)으로 11월 말 기준 역대 최고다. '불닭볶음면'으로 K푸드 열풍을 주도하고 있는 삼양식품은 최근 식품 기업 중에선 처음 '7억 불 수출탑'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국의 정치적 불안정이 'K푸드 열풍'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느닺없는 계엄령으로 손상된 대외 신인도와 흔들린 K푸드의 신뢰를 회복하는 과제는 결국 우리 기업들의 몫으로 남겨졌다.

이재윤 머니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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