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고개를 들면 어느새 창밖 풍경이 달라져 있고, 달력을 넘기는 손길이 어느덧 익숙해진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도 봄을 맞았던 어머니와 오빠들과의 행복한 기억을 마주한다. 어릴적 어머니는 산과 들의 어린 쑥으로 갖가지 요리를 해 주셨다. 쌉싸름하면서도 달콤한 향이 온 집안을 가득 채우면, 그게 바로 우리 집 봄의 시작이었다. 심심한 날 혼자 집에 남겨지지 않으려 악착같이 붙어서 오빠들을 따라 나서는 일은 늘 모험이 가득했다.
커다란 나무에 오르내리는 오빠들 사이로, 나 또한 질세라 나무 위를 오르곤 했다. 나무 주변에는 온갖 들꽃과 풀들이 저마다의 향기를 뿜어냈다. 활짝 핀 벚꽃, 민들레의 노란 미소, 냉이의 풋풋한 순수함, 제비꽃의 보랏빛 수줍음. 어린 내게 그곳은 세상에서 가장 풍요로운 정원이었다. 풀잎을 만지고, 꽃잎을 코끝에 가져다 대며 흙냄새와 풀 내음을 온몸으로 느꼈던 그 시간들. 그때의 나는 몰랐다.
그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산과 들판의 향기들이 얼마나 오래 기억될지. 시간이 빠르게 흐를수록, 우리는 자꾸만 과거의 어느 행복했던 순간으로 되돌아가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 기억 속 향기를, 그 행복했던 순간을 다시 되살리고 싶을 때, 오늘 한 잔의 와인에서 다시 만난다.
◆ 싱그럽게 피어나는 향기, 랑게의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랑게(Langhe)는 와인과 송로버섯이 공존하는 인류 문화의 정수이다. '야생(Sauvage)'의 생명력을 품은 소비뇽 블랑은 보르도를 넘어 뉴질랜드, 루아르, 그리고 이탈리아 랑게에 이르기까지 각기 다른 테루아를 투영하며 땅과 인간이 일궈온 고귀한 서사를완성하게 된다.
◆ 피오 체사레 랑게 소비뇽 블랑 (Pio Cesare Langhe Sauvignon Blanc)
-Region: Italy/ Piedmont/ Langhe
-Winery: Pio Cesare
-Grape: Sauvignon Blanc 100%
-Farming: Conventional
-Winemaking: Stainless steel fermentation & French oak barrique
-Alcohol: 13%
◆ 와이너리 이야기 피오 체사레(Pio Cesare)
1881년 설립된 피오 체사레는 이탈리아 피에몬테의 심장부 알바(Alba)에서 5대째 가족 경영을 이어온 역사적 와이너리다.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의 프리미엄 크뤼 70ha를 기반으로 전통과 혁신의 조화를 실현하며, 네비올로 뿐만 아니라 랑게 소비뇽 블랑을 통해 화이트 와인의 탁월한 잠재력까지 증명하고 있다.
◆ 테이스팅 노트(Tasting Notes)
외관(Appearance): 투명한 레몬 옐로우 빛깔과 잔 가장자리에 머무는 볏짚 색이 젊고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향(Nose): 청 사과와 자몽의 신선한 과실 향이 선두에 서고, 뒤이어 세이지와 흰 후추의 섬세한 스파이시함이 교차한다. 특히 랑게 석회암 토양 특유의 차가운 미네랄리티와 젖은 돌의 뉘앙스가 깊이 있는 복합미를 완성한다.
팔렛(Palate): 바삭한 산미와 함께 라임, 구스베리의 상큼함이 입안을 깨운다. 부드러운 질감 뒤에 숨겨진 탄탄한 구조감이 인상적이며, 시트러스와 허브의 정갈한 여운이 길게 이어진다.
결론(Conclusion): 단순한 품종의 전형성을 넘어 랑게 테루아를 영리하게 해석한 수작이다. 탁월한 산도와 미네랄의 균형은 한국 식재료와의 페어링에서 독보적인 진가를 발휘할 것이다.
◆ 푸드 페어링(Food Pairing)
- 일반 페어링: 새우 파스타, 홍합찜, 생선회, 미나리 문어숙회
- 비건 페어링: 쑥전, 토마토 오이 샐러드, 시금치 두부 샐러드, 두릅 튀김, 쑥 된장국,
--혼술 페어링: 견과류를 곁들인 치즈 플레이트, 올리브 마리네이드
-박영신 와인 칼럼니스트-
"야생의 이름으로 태어난 소비뇽 블랑처럼, 당신 또한 어디서든 자유롭게 피어날 수 있다."
현 한국와인소비자협회 회장으로, 경희대학교에서 와인 소믈리에 석사 및 조리외식경영학 박사를 수료했다. 와인바와 전문 숍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소비자 니즈를 정확히 읽어내는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와인 소비자 행동 관련 논문을 발표하고 국내 주요 와인 대회 심사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칼럼니스트이자 협회장으로서 생산자·유통자·소비자를 잇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