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소속 행정기관이 기업 조사에 나선다. 조사 결과에 따른 행정 처분도 정부 결정에 따라 이뤄진다. 형사 처벌 고발권자 역시 정부가 맡는다. 조사부터 판단과 고발까지 행정기관은 곧 '심판자'란 이름의 한 울타리 안에 존재한다. 행정기관이 기업 등의 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고 행정처분을 내리는 데 그치지 않고, 경우에 따라 형사절차로 넘길지까지 결정하는 구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대표적인 곳이 공정거래위원회다. 공정위의 사건 처리 절차를 보면 '인지·조사 → 심사 → 심의·의결 → 처분 → 고발'이 한 기관 내에서 이뤄진다. 공정위는 조사와 심사를 거쳐 심의·의결을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시정명령이나 과징금뿐 아니라 고발까지 결정할 수 있다. 공정위가 1심 판결 기능까지 갖는 준사법기관으로 분류되는 이유다.
올해 초부턴 심사보고서 송부 사실까지 언론에 공표하고 있다. 심사보고서는 검찰 공소장에 해당한다. 그동안 "피의사실 공표 우려가 있다"며 비공개 원칙을 고수했던 공정위가 심사보고서 송부 사실을 대외에 알리기 시작한 것이다. 기업들은 조사를 받기전에 사실상 '유죄' 판결을 받는 셈이라며 반발한다.
금융감독 당국도 마찬가지다. 금융회사 증권회사 등이 내는 비용을 재원으로 하는 금융감독원이 이들을 대상으로 검사와 감독을 하고 제재 결정을 내린다. 금융감독원 검사를 통해 사실관계를 들여다보는 금융위원회는 거액의 과징금과 기관·임직원 제재를 확정하는 과정에서, 행정기관의 판단이 사실상 형사처벌에 버금가는 위력을 갖는다. 행정제재의 이름을 달고 있지만 당사자가 체감하는 경제적·사회적 불이익은 사실상 '처벌' 수준으로 커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물론 공정위나 금융당국이 법원의 역할을 그대로 대신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 기관의 결정은 행정처분이고 당사자는 이의신청을 하거나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공정위 역시 공식적으로 피심인에게 의견 진술과 자료 열람과 복사, 증거조사 신청 등의 절차적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문제는 권한이 한 기관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이 만들어내는 구조적 위험이다. 조사 단계에서 자료를 수집한 기관이 이후 그 자료를 토대로 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고, 과징금 등 행정제재를 결정하는 것은 물론 사안에 따라 형사고발 여부까지 판단하다보니 '셀프 심판' 논란이 나온다. 비슷한 권한을 가진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등 사정·행정기관도 같은 예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정위는 헌법상 독립적 국가기관이면서, 합의제 행정기관이고, 법원 1심 기능을 하는 준사법기관이지만 결국 중앙 행정기관"이라며 "무리하게 제재한 결과가 법원에서 패소하면 기업도 피해를 보고 행정력도 낭비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