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권력 다툼은 해도 정책 노선은 흔들지말라

원종태 부장
2015.01.20 06:00

둘이나 셋이 같은 편을 이뤄 상대팀과 번갈아 바둑을 두는 것을 ‘연기 바둑’이라고 한다. 바둑 실력이나 스타일이 제각각인데 어떻게 한 마음처럼 바둑을 둘 수 있을까? 하지만 그래서 이 연기 바둑은 더욱 박진감이 넘친다고 한다. 나와 한 팀인 다른 사람의 스타일을 부지불식간에 읽어내고 내 순서에서 그의 구상대로 돌을 놓아준다. 마찬가지로 내 의도를 같은 팀이 알아주길 바라며 한 수 한 수 전진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연기 바둑은 같은 편 둘이 전혀 다른 스타일을 고집해선 안되며, 특히 같은 팀인데도 각각 처음 두는 것처럼 바둑을 둬서는 백패 한다. 당장 내가 두고 싶은 한 수를 접고, 더 먼 수를 내다보고 이를 계획하는 것이 연기 바둑의 급소다.

이 연기 바둑의 불패 원리는 기업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당장 눈앞의 영업이익률도 중요하지만 더 먼 미래의 성장동력을 앞서 챙기는 것은 절대 쉽게 봐선 안 된다. 능력 있는 전문경영인은 3∼4년간 최고의 실적을 올릴 순 있지만 자신의 후임들을 위해 10∼20년 후 신사업을 찾진 않는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이런 기업의 실적이 꺾이면 제대로 위기를 맞는 사례도 많이 봐왔다.

“내 임기만 잘 넘기면 된다”는 이런 근시안적 시각이 정책이나 입법 등 한 나라를 움직이는 시스템에 작용할 때에는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보육 직원들의 어린이 폭행 사건 접수건수는 이미 해마다 수 백 건에 달했다. 어쩌면 이런 문제들은 이미 바둑판 위에 드러날 대로 드러난, 나올 대로 나온 문제들이다. 이런 치명적 약점을 못 본 척하고, 다음 바둑을 둘 사람이 알아서 하겠지 하는 생각이 문제의 반복을 부른 것이다.

수 십 년째 계속돼 온 주택난도 그랬고, 온 국민이 문제를 알고 있지만 고치지 못하는 사교육 문제도 그랬다. “내 임기에 왜 저 골치 아픈 것들을 꼭 바꿔야 하냐”는 식으로 안이하게 연기 바둑을 뒀기 때문에 문제를 개선할 시간을 놓쳤다. 그리고 그 임기 이후를 물려받은 사람은 아예 바둑판을 갈아엎고 자신만의 바둑을 처음부터 다시 두고 싶어 했다.

이제 우린 정책과 입법의 시간들을 좀 더 길게 가져갈 필요가 있다. 예컨대 중국의 역대 지도자들은 크게 ‘보수정치’와 ‘시장경제’, ‘실용외교’ 3가지 목표를 위해 100년의 관점에서 연기 바둑을 둔다고 한다. 서울대 조영남 교수는 시진핑 등 5세대 지도자들이 이끄는 이 중국 정치를 이렇게 단언했다. “그들에게 권력 투쟁은 있어도, 노선 투쟁은 없다”고. 그들에게는 이전 세대의 공적은 공적대로 이어가고, 잘못된 점은 잘못된 점대로 바꾸려는 정책의 목표가 그만큼 분명하다는 것이다. 정책 노선을 쉽게 흔들거나 바꾸지 않는다.

시진핑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들도 사실 그가 주석이 되기 직전인 2011년 11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모두 결정된 사안들이다. 권력 승계와 정책 결정을 분리한 이 중국의 시스템은 언젠가 굉장한 힘을 발휘할 것이다.

만리장성은 한 시대의 건축물이 아니라 춘추전국시대부터 명나라에 이르기까지 수백 년간 시대를 이어가며 만든 산물이다. 5년마다 한 번씩 바둑판을 바꾸기보다, 100년간 계속 연기 바둑을 둔다는 마음으로 정책의 한 수들이 이어져야, 저 어이없는 어린이집 폭행 같은 사건은 더 이상 반복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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