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뉴스의 적지 않은 부분이 인간의 공격성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채워진다. 국내만 하더라도 소위 ‘묻지마’ 폭력부터 어린이집 교사의 아동학대, 물질적 이득을 위한 친족살인에 이르기까지 그 형태도 각양각색이다. 공격사건 중에서도 근래 가장 참혹한 것은 이슬람국가(IS)가 자행한 요르단 비행사 화형이나 여러 인질의 참수일 것이다. 문명사회에서 가해자들이 희생자들의 목숨을 직접 앗아가는 것은 흔치 않은 경우다.
역사적으로 인간은 도구를 이용한 공격을 발달시켜왔고, 특히 근대 이후 과학기술의 발달로 기계를 이용한 공격이 빈번해졌다. 사람들은 도구를 매개로 한 간접공격을 감행하기가 상대적으로 더 쉽다. 또한 자신이 한 행동으로 겪는 피해자의 고통을 직접 보지 않을 때 가해자들은 죄책감도 덜 느낀다. 반대로 사람들은 직접적으로 가해하는 행동은 꺼리는데, 그럴 경우 자신을 잔인한 존재로 평가하고 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IS의 공격행위가 더 잔인하게 보이는 것은 이러한 일반적인 인간의 심리를 거스르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만이 자기 종의 구성원을 공격하는 것은 아니다. 동물들도 자신을 보호하고 유지하기 위해 같은 종의 개체들을 때때로 공격한다. 이러한 동물들의 공격성은 나름대로 바람직하고 어느 정도는 관련된 모두에게 이득이 될 수 있다. 가령 영토행위를 하는 동물들은 자기의 영토에 들어온 침입자를 공격해서 내쫓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주어진 영토에서 이용할 수 있는 식량에 비해 개체수가 초과하므로 결국 모두 죽음에 이른다.
또한 진화론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맹수처럼 공격력이 강한 동물들은 그와 비례해서 그것을 억제할 수 있는 능력도 함께 진화했다. 그 결과 우리가 볼 수 있듯이 맹수들은 같은 종의 개체들과 먹이와 영토싸움을 할 때 치명상을 입히기보다 주로 위협을 통해 승부를 낸다. 반대로 인간은 높은 인지능력으로 공격력은 어마어마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억제력은 발달하지 못했다. 이러한 점에서 인간은 지구 위 동물 중 가장 위험한 존재다.
인간의 인지능력이 야기하는 또 하나의 위험요인은 ‘생각’이다.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은 큰 축복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인간의 생각은 공격과 갈등의 막강한 원인이 된다. 어떤 주제에 대한 우리 각자의 생각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이때 생각을 기준으로 타인들을 가령 적과 아군으로 평가한다면 필연적으로 많은 사람이 나의 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생각에 대한 명칭은 수없이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이념이고 이 외에 가치관, 입장, 관점, 기준 등이 모두 우리 생각의 일면을 보여주는 용어다. 정신의 이러한 요소들이 가지는 유용성 혹은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그것이 가지는 위험성, 즉 서로를 적대적으로 분리해서 상대방에 대한 공격을 합리화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인간은 생각으로 살기보다 살면서 생각하는 존재에 더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생각을 하느냐보다 어떤 삶을 사느냐가 우리에게 더 본질적인 것으로 보인다.
한 뉴스에 따르면 ‘세계 가치관 조사’라는 프로젝트에서 사회과학자들이 36개국 청소년을 상대로 더불어 사는 능력을 측정했다. 그 결과 한국 청소년들은 35위로 거의 꼴찌였다. 이렇게 길러온 청소년들에게 집단따돌림과 학교폭력을 그만두라고 요구하는 게 무슨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이러한 지표가 분명 우리 청소년에게만 해당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우리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반영하는 심각한 사인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는 이와 같은 경고의 사인이 수없이 많다. 더 늦기 전에, 편가르기보다 다함께 편먹는 사회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