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 시평] 복지 증세의 심리학

김원섭 기자
2015.02.18 07:51

다시 복지논쟁이 뜨겁다. 무상급식을 둘러싼 지난 복지논쟁은 주로 복지서비스를 공급하는 방식의 문제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복지제도의 재원을 조달하기 위한 증세문제가 주된 쟁점이 되었다.

한편에서는 더 이상 증세는 어려우니 있는 복지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과잉복지로 국민이 나태해 진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다른 한 편에서는 증세하지 않으면 복지확대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당장 증세계획부터 세우라는 것이다. 이렇게 극단적인 두 주장 사이에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정치적 토론은 어렵게 되었다. 하지만 OECD국가들 중 거의 꼴등에 가까운 복지수준을 또 깎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증세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또 현 단계에서 증세 없이 복지확대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의 복지감축도, 당장의 복지증세도 아니다. 이보다 복지증세를 어렵게 하는 요인들을 찾아내 이를 극복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복지증세에 대한 저항은 사실상 합리적인 것보다 심리적 요인에 있다.

합리적으로 본다면 국민들은 복지증세를 반대해서는 안 된다. 복지혜택이 확대되면 국민 대다수가 자신이 낸 세금보다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복지선진국의 경우 복지혜택을 가장 많이 받는 사람들은 저소득층이 아니라 세금을 조금이라도 내는 중산층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사람들이 복지증세에 저항하는 것은 주로 심리적 이유들 때문이다. 우선 국민들은 증세를 하더라도 정부가 복지가 아니라 다른 곳에 세금을 쓸 것이라고 의심한다. 이러한 의심에는 근거가 있다. OECD국가들은 평균적으로 정부지출의 약 31%를 복지지출에 사용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약 12%만을 복지에 투입한다. 특히 지난 정부가 막대한 정부예산을 국내외에서 낭비한 사실이 알려져 국민은 분노하고 있다. 이 상태에서 증세를 논의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둘째, 국민들은 조세제도가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증세의 부담을 자신들만 짊어지고 다른 사람들은 회피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특히 국민들은 정부가 일반 국민들의 세금은 늘리고 기업이나 부유층의 조세부담은 경감해준다고 의심한다. 또한 유리지갑인 근로자들은 자신들이 자영업자들에 비해 부당하게 많은 세금을 부담한다고 생각한다.

증세의 세 번째 심리적 장애는 부정적 편견(negative bios)이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얻는 것보다 빼앗기는 것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따라서 받는 복지혜택에는 별로 고마워하지 않지만 빼앗아가는 세금에는 격렬히 저항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심리적 장애가 극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더 많은 복지를 받기 위해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합리적인 설득은 먹히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현 단계에서 시급한 것은 복지증세가 아니다. 국민들의 복지증세에 대한 심리적 장애를 완화하는 것이다. 우선 정부가 복지를 위해 먼저 허리띠를 졸라매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복지 중심의 지출구조로 과감한 구조조정이 요구되는 것이다.

둘째, 조세정의를 세우되 기업과 근로자, 부자와 가난한 사람, 근로자와 자영업자가 공정하게 세금을 부담한다는 믿음을 세워야 한다. 이런 면에서 지난 시기에 실시된 부자감세는 철회되어야 한다.

셋째,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있는 부정적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증세는 매우 단계적으로 그리고 국민적 합의에 기초해서 실시되어야 한다. 전면적 증세를 실시하기보다 종합부동산세와 같이 특정한 세금부터 조심스럽게 인상해야 한다. 또한 IMF가 권고하는 것처럼 직접적인 세율인상보다 소득공제 방식을 축소하는 등 매우 섬세하고 효과적인 기술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 정부지출과 조세제도에 대한 신뢰 없는 무작정한 복지증세는 복지제도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약화시켜 복지삭감에 이르게 하는 또 다른 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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