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일지매, 봄을 부른다

[청계광장]일지매, 봄을 부른다

이태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2026.02.13 02:05
중앙박물관 이태희 연구관
중앙박물관 이태희 연구관

중국 명나라 가정 연간(1522~1566년) 소주 고을에 '나룡'(懶龍)으로 불리는 도둑이 있었다. 나룡은 체구는 작았으나 담력이 크고 영리한 데다 민첩했다. 뼈가 없는 듯 유연하고 바람을 타는 듯 가벼워 지붕에 올라 들보를 뛰어다니고 담에 붙어 기어오르기도 했다. 임기응변에도 강해 입으로는 여러 동물의 소리를, 손짓발짓으로는 다양한 악기 소리를 냈다. 비와 바람처럼 신출귀몰하는 세상 최고의 도둑이었다. 낮에는 민가에, 밤에는 저택에 숨어 지내다 한번 결심하면 크게 한탕했는데 '게으른 용'이란 뜻의 나룡이란 이름도 이 때문에 붙었다. 그는 도둑질한 장소마다 검은 벽에는 흰 가루로, 흰 벽에는 숯으로 '매화 한 가지'(일지매)를 남겨놓았다.

명말청초의 능몽초가 1632년 출간한 소설집 '이각박안경기'(二刻拍案驚奇)에 나오는 이야기다. 일지매 이야기는 조선 후기의 문장가 조수삼(1762~1849년)이 쓴 '추재기이'(秋齋紀異)에도 등장한다. '일지매는 절도를 일삼는 협객이다. 매번 탐관오리의 재물을 훔쳤는데 갖고 나온 물건은 가족을 돌볼 수 없는 이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는 처마 위를 날고 벽을 타고 달려 민첩하기가 귀신 같았다. 도둑맞은 집은 어떻게 훔쳤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다만 붉은색으로 일지매를 새겨 표식을 남겨놓았는데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 말라는 뜻에서였다.'

소설의 확산과 변용이든, 아니면 일종의 모방범죄라 한들 일지매 이야기가 국적을 불문하고 사람들에게 널리 사랑받았음은 분명하다. 능몽초는 나룡을 평하며 "난세를 만났으면 군영을 기습하거나 첩자로서 큰 공을 세웠을 터인데 태평한 시대를 만나 작은 재주를 부려 그 능력으로 화젯거리가 된 것에 불과"했다며 아쉬워했으나 일지매 이야기의 유통과 재생산을 생각하면 그의 재주는 오히려 시대를 넘어 정의에 대한 대중의 욕망을 대변하는 상징으로 전화했다고 할 수 있다.

법의 테두리 바깥에서 정의를 실현하는 이런 이야기는 영화나 드라마의 주요 소재가 되곤 한다. 특히나 권력, 재력, 완력 등 억압의 수단을 그대로 사용해서 복수하는 이야기는 일종의 '사이다'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일지매 이야기의 화룡점정은 그가 남긴 '매화 한 가지'에 있다.

사람들의 매화 사랑 이야기는 이루 셀 수 없다. 진나라 때 육개는 친구 범엽에게 매화 가지를 꺾어 보내며 "강남에는 달리 보낼 것이 없어 봄 한 가지를 잠시 드릴 뿐"이라고 했다. 은둔자적하는 삶을 살았던 송나라의 시인 임포는 '매처학자'(梅妻鶴子·매화를 처로, 학을 자식으로 삼았다)로 유명하다. 범성대는 토지를 개간해 수백 그루의 매화를 심고 품종과 재배방식을 연구해 화훼서적 '매보'(梅譜)를 내기도 했다.

퇴계 이황은 매화를 주제로 여러 편의 시를 남겼는데 매화를 소중한 벗으로 여겨 교감했다. 김홍도는 곤궁한 처지에서도 그림값 3000을 받아 그중 200으로 쌀과 땔나무를 사고 2000으로는 매화를, 800으로는 술을 사서 벗들을 초대해 매화음(梅花飮)을 열었다고 한다.

옛글을 보면 매화는 3가지 미덕을 지녔다. 첫 번째는 매화의 개화 시기다. 매화는 추위가 가시기 전에 핀다. '봄빛에 기대려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봄은 매화를 따르고 뭇꽃은 봄을 따른다. 두 번째는 고결한 색이다. 매화의 티끌 없는 흰색은 종종 눈과 비교된다.

그리고 세 번째는 그곳에서 퍼지는 은은하지만 흩어지지 않는 향이다. 누군가는 "멀리서 바라보아도 그것이 눈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이유는 매화에서 은은하게 풍겨 오는 향기가 바람을 타고 전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지매는 '매화 한 가지'를 더해 자신의 목적을 밝히고 역할에 가치를 부여했다.

요즘 박물관은 매화 향기로 가득하다. 지금은 안에서지만 곧 밖으로 이어질 것이다. 날씨가 여전히 매섭지만 봄을 향해 탐매(探梅)에 나서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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