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인공지능 시대의 '유연성 규제'

[투데이 窓]인공지능 시대의 '유연성 규제'

임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전 대한상공회의소 SGI 연구원장
2026.02.13 02:05

임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전 대한상공회의소 SGI 연구원장
임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전 대한상공회의소 SGI 연구원장

인공지능은 이미 사회 전반에 깊숙이 침투했지만 그것이 만들어낼 미래의 모습에 대해서는 여전히 합의된 전망이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인공지능이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려 장기적인 고성장을 이끌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 다른 이들은 인공지능이 부의 집중을 가속화하고 노동자의 생활기반을 약화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또 한편에서는 인공지능의 경제적 효과가 기대만큼 크지 않을 것이라는 신중한 평가가 제기된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전망이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인공지능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비트코인 가격의 급격한 하락도 기술 기반 자산이 지닌 본질적인 불확실성을 다시 한번 드러낸 사례라 할 수 있다. 새로운 디지털자산 시대의 상징으로 여긴 비트코인은 기대와 공포가 교차하는 시장에서 극심한 변동성을 반복한다. 기술은 언제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지만 그 가능성이 현실에서 어떤 방향으로 구현될지는 오직 사후적으로만 확인된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서 규제가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가다. 지나치게 늦은 규제는 기술이 사회에 심각한 피해를 남긴 이후에야 뒤따르는 사후처방에 그칠 위험이 있다. 반대로 너무 이른 시점의 규제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잠재적 이익까지 함께 차단할 수 있다. 규제의 부재와 과잉이라는 양극단 모두가 현실적인 해법이 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인공지능 시대의 규제는 새로운 방식의 사고를 요구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주목할 개념이 바로 적응적 규제다. 적응적 규제는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단일 시나리오에 맞춰 규제를 고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가능성을 가정하고 각각에 대응할 수 있는 규제장치를 미리 설계해두는 규제다. 그리고 그 규제는 즉각 발효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영향이 일정한 기준에 도달했을 때 자동으로 작동하도록 설계된다.

적응적 규제의 대표 형태로는 조건부 규제를 들 수 있다. 이는 사전에 지정된 경제·재정·환경적 여건이 특정 기준에 도달했을 때 규제가 자동으로 발효되는 트리거 기반 규제다. 예컨대 미국의 일부 주에선 연방정부의 재정지원 수준이나 자체 재정여건이 일정요건을 충족할 경우 메디케이드 적용대상을 자동으로 확대토록 하는 법률을 제정해왔다. 임대료 상승률이 사전에 설정된 기준을 초과할 경우 추가 입법 없이 임대료 상한제가 즉시 발효되도록 규정한 도시들도 있다.

환경분야에서도 유사한 규제가 시행됐는데 온실가스 배출량이 특정 기준을 넘으면 세율이 자동으로 인상되거나 보조금 지급이 단계적으로 축소되는 방식이 그 예다. 이러한 제도들은 어떤 조건에서 개입이 필요해지는지를 미리 규정함으로써 불확실성을 제도 안으로 내재화한다는 점에서 적응적 규제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적응적 규제에는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통제된 환경에서 기술실험을 허용하는 방식과 함께 사전승인이나 포괄적 금지 대신 기술활용의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고 피해발생시 강한 제재를 가함으로써 행태를 규율하는 사후책임 중심 규제 등이 포함된다.

비트코인 시장의 급변이 보여주듯 기술 기반 혁신은 기대와 위험을 동시에 내포한다. 따라서 단순히 허용할 것인가, 금지할 것인가의 이분법을 넘어 불확실성을 전제로 작동하는 규제방식이 필요하다. 적응적 규제는 그 자체로 완벽한 해답은 아니다. 그러나 미래를 모른다는 현실을 인정한 상태에서 가장 책임 있는 대응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인공지능 시대의 규제는 기술을 통제하기 위한 족쇄가 아니라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로 변화를 수용하면서도 혁신이 지속될 수 있도록 조율하는 장치여야 한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필요한 것은 변화에 맞춰 스스로를 조정할 수 있는 유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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