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동백서, 어동육서야!! 틀리면 조상에게 죄라도 짓는 것처럼 한바탕 소란을 피운다. 명절에 제사나 차례를 지낼 때면 늘상 부닥치는 문제다.
요즘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난리다. 그리고 그 핵심은 혁신이다. 그런데 현 교육체계에서 혁신은 이루기 어려워 보인다. 사전을 찾아보니 공부란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며, 학문이란 한 분야를 체계적으로 배워서 익히는 것이라 했다. 차이는 무엇일까? 공부를 한자로 쓰면 ‘쿵푸’(功夫)로 계속 연마한다는 뜻이다. 태권도의 이미지다. 그런데 쿵푸에는 ‘왜’라는 요소가 없다. 학문은 바로 이 ‘왜’를 현실에 기초해 쉽고 논리적으로 일반화하는 작업이다. 지금의 우리는 단지 공부에 능할 뿐 학문에 익숙지 못하다.
최근 출간된 한 원로 수학자의 책(풍수화)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아직 전통적인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전통사회에서는 오직 소수의 양반만이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과거를 통해 출세가 보장되었다. 양반들만이 그들의 리그에서 고전을 익히고, 답안지를 잘 적어내면 평생 ‘왜’라는 물음 없이도 편하게 잘 살던 사회였다. 그러나 근대 이후 이러한 공부는 효용이 크게 떨어진다. 우주여행, 신소재 개발 등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진행되려면 ‘왜’라는 물음이 중요하고 학문은 그 현상을 논리적으로 파악해서 문제를 풀어 나가는 것으로 개념이 근본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이러한 인식의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아직도 전통개념을 금과옥조처럼 떠받들고 있다. 그 폐해가 여러 곳에서 보인다.
첫째, 학문이 지나치게 세분화, 심화되어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심리학 등 사회과학 분야는 서로 소통하려 하지 않고 이들을 관통하는 철학과 역사 또한 그 역할이 보이지 않는다. 말로는 학문의 통섭을 얘기하면서 다른 학문에 다가가려는 노력은 서로 하지 않는다. 각계각층을 연결해야할 정치계에서도 불통은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둘째, 생각의 다양성을 잃고 있다. 공부가 인쇄물을 암기하는 것이 주가 되다보니 다른 생각이 스며들기 어렵다. 논술고사로 공부를 보완하고자 하지만 옛 성현의 글귀 정도 인용하는 것이 좋은 점수를 받는 관건이 되었다. 여전히 과거의 훈련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엄청나게 수다를 좋아한다. 수다가 때론 논쟁으로 연결되어 나름대로의 학문적 훈련을 겸하고 있다. 미국의 토론문화, 일본의 연구회 등도 소통의 문제를 극복하는 통로가 된다. 관점이 있고, 논점을 찾으려는 노력이 있으며 논리를 구성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침묵이 미덕이고 그저 일방적으로 들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셋째, 관료 양성 문제가 근본적으로 도전을 받고 있다. 법관이 법전만이 아닌 주변 환경을 고려해 판결을 해야 하는 복잡한 사회가 되었다. 외교관들의 등용문이던 외무고시는 폐지되고 행정고시는 아직 남아있지만 예전의 영광을 잃은 지 오래다. 많은 공무원이 기회만 있으면 민간부문으로 가려 하나 공직사회는 단편적인 부분에만 몰두하다보니 고인물이 되어 시대의 전반적인 문제에 어두운 경우가 많다. 반면에 민간 영역은 격렬한 도전을 헤치고 나가다보니 실제로 학문을 체득하며 강한 체력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민간에 온 관료출신들은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며 그저 대정부용 로비스트에 머물고 만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공부에만 몰두해 홍동백서에 집착한다면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거나 전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차례상이나 제사상도 생전의 생일상처럼 대접하는 과정이라고 생각을 바꾸면 핵심은 훨씬 간단해진다. 전채(前菜) 주식(主食) 후식(後食)으로 개념을 정리하고 현실을 반영하여 새로운 순서로 진열한다면 홍동백서니 어동육서는 무의미해진다. 하루빨리 ‘왜’가 체질화되는 한국적 학문체계를 세우는 교육개혁이 필요한 이유다.
한때 짧은 생각으로 절대적 상아탑이 존재하고 매사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실제로 우리 경제 구조가 산업화, OEM을 하던 시기에는 공부를 통한 모방만 해도 충분하였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모방에 관한한 우리보다 훨씬 오랜 역사를 가지고 더 깊은 공부를 한 중국을 포함하여 더 경쟁력을 가진 많은 나라들이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이제 모든 일을 상대적으로 인식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야한다. 학문은 현상을 쉽게, 논리적으로 일반화해서 설명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이런 교육훈련이 전제되어야 진정한 산업 혁신도 가능해지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