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재벌총수의 심기경호보다 중요한 것

박준식 기자
2015.04.07 09:07

허창수GS그룹 회장은 상당히 부지런한 오너다. 일상의 기강이 서 있는 인물이라 아침 일찍 서울 역삼동 그룹 본사로 출근해 그날 보고를 듣고 결재사항을 미루지 않고 처리한다. 재벌 오너 중에 일정을 제 멋대로 바꾸고 부하들을 기다리게 하는 이들이 많은데 허 회장은 예측 가능한 보스에 속한다.

허 회장이 오전에 빼곡한 일정을 처리한 뒤 낮부터 특별한 업무가 없으면 찾는 곳이 인터컨티넨탈호텔이다. 허 회장은 역삼동 사무실에서 인터컨티넨탈호텔이 있는 삼성동까지 수행원 한명 정도만 데리고 걷는다고 한다. 48년생인 그가 신체적인 건강과 총명한 판단력을 유지하는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 호텔에 도착하면 수행원마저 보내고 혼자 피트니스 클럽을 찾아 움직인다.

GS그룹이 지난 2월, 1년간 IMM프라이빗에퀴티와 벌여온 파르나스호텔 매각 협상을 거둬들이고 계열사인 GS리테일에 매각하기로 했을 때 그건 그리 놀랄 일이 아니었다. 허창수 회장이 파르나스와 그 주요 자산인 인터컨티넨탈호텔에 가진 애착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일만한 결정이었다.

파르나스호텔을 그룹 내에 보유하기로 했을 때 오히려 놀란 사람들은 GS그룹 실무진이었다. GS건설 PF(프로젝트파이낸스) 담당자들은 매각이 반년 이상 미뤄지는 동안 수백억원의 관련 이자가 쌓인 것을 걱정한다. 파르나스호텔을 팔아 빚을 갚을 요량이었는데 이를 계열사에 떠넘긴다니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GS리테일 실무진도 놀라긴 마찬가지다. 본업이 유통인데 난데없이 호텔사업을 하자니 황당한 표정이다. 배임 이슈를 막으려면 IMM과 협의한 가격보다 높게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데 "시너지는 고사하고 자금 마련에 앞길이 구만리"다.

사실 이런 혼란은 오너의 집착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오히려 그를 보좌하는 주요 경영진이 총수의 심기를 거스를까 우려해 직언을 하지 못한 까닭일 게다. GS에는 30년 경영전문가도 있고 난다긴다하던 사정기관 공무원 출신 경영자도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총수에게 직언을 하긴 힘들었던 모양이다.

파르나스호텔 매각건은 GS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도 오너 일가의 잘못에 직언하지 못했던 보좌진의 잘못이 없다고 할 수 없다. 국내 기업의 경영 수준이 한단계 높아지려면 총수의 가려진 눈을 그대로 두고 총수의 비위만 맞춰 호가호위하는 대리인의 문제를 어떤 식으로든 해결할 필요가 있다. 대리인의 문제에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사회적인 합의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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