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캔버라엔 있고, 세종시엔 없는 것

세종=이동우 기자
2015.04.10 06:40

호주인들이 국가 정체성의 상징이자 자부심으로 삼는 캔버라의 ‘전쟁 기념관’(War Memorial). 그 앞에 넓게 펼쳐진 도로 ‘안작 퍼레이드’(Anzac Parade)의 끝에는 국회의사당이 자리 잡고 있다. 자못 위엄이 느껴지는 풍경이다. 수도 캔버라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상징이 국회라는 점에서, 그저 부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지난주 캔버라 출장을 가서 만난 교민의 대부분은 우리나라의 행정수도 세종시가 자리 잡기 위한 첫 번째 조건으로 국회 이전을 꼽았다. 캔버라에서 10여년째 거주중인 A씨는 "캔버라는 한적한 시골 같은 이미지는 있지만, 행정 비효율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며 "가끔 세종시의 행정 비효율 소식을 접하는데, 국회가 하루 빨리 내려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1929년 국회 이전 이후, 캔버라는 호주 최고의 취업률과 문화지수를 자랑하는 도시로 성장했다. 1990년대 중반 15만명 수준이었던 캔버라 인구는 최근 약 40만명 가까이 늘어났다. 호주 통계청에 따르면 40년 뒤에는 약 70만명까지 인구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공무원의 이주가 늘며 시드니와의 주거 공동화 현상도 완화되고 있다.

세종시의 경우, 일주일에도 몇 번씩 국회를 오가는 행정 비효율이 끊임없이 제기돼 캔버라와 대조를 이룬다. 고위 공무원의 경우 국회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 대부분 이주를 꺼리고 있다. 그런 만큼 세종시가 자리 잡기 위해서는 국회가 세종으로 내려와야 한다는 지적이 멈추지 않는다. 한 공무원은 “국회 전체가 내려올 수 없다면 상임위만이라도 내려와야 한다”며 “상임위가 내려오면 사무처 등 국회의 3분의 2가 내려오는 셈이니, 그만큼 서울과 세종을 오가는 공무원도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회의 세종시 이전은 관습헌법을 이유로 들어 무산된 바 있다. 하지만 세종시의 행정 비효율이 점점 커지는 상황에서 관습이 얼마만큼의 국가 발전을 보장해 줄 수 있는가는 의문이 든다. 과거 호주는 시드니와 멜버른을 두고 갈등하다 캔버라를 새로운 수도로 지정하고, 과감하게 행정부와 국회를 이전했다. 끝없이 이어질 수 있는 소모적인 논쟁을 버리고, 국익을 고려한 선택을 한 셈이다. 당시 캔버라의 사례처럼 지금 세종시에도 현명한 결단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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