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29 재보선에서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이 압승을 거둔 것을 놓고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야권 단일화의 실패와 2030 세대의 저조한 투표율, 새천년민주당의 내부 분열 등이 많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다른 점에 주목하고 싶다.
미국 사례를 보면 유권자 관심은 정치 외교에서 경제로, 후보의 ‘정의로움’보다는 ‘능력’으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It’s the economy, stupid”
1992년, 미국의 작은 아칸소 주지사였던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걸프전을 승리로 이끌며 국제사회를 호령하던 부시 당시 대통령을 꺾는 파란이 벌어졌다. 이때 클린턴 후보 캠프에서 내세웠던 슬로건은 간단하지만 분명했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부시 전 대통령은 걸프전을 통해 미국의 힘을 전 세계에 보여줬지만, 정작 미국인들은 경기침체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미국 유권자들은 겉으로 화려하지만 경제적 실속은 별로 없는 ‘슈퍼 경찰국가’을 추구하는 대통령보다는, 냉엄한 경제현실에 집중하며 대안을 제시하는 클린턴 후보에게 더 끌렸던 것이다. 이후로 미국 대선뿐만 아니라 상·하원 선거 모두에서 경제 이슈가 정치·외교 이슈를 압도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2016년 대선을 앞둔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제 한국을 돌아보자.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자치 단체장 등으로 선출된 사람에 대한 개인적 호불호(好不好)는 다를 수 있지만, 한국이 과거의 민주주의 암흑기에서 벗어났다는 점은 모두 인정한다. 우리나라는 대선, 총선을 비롯해 각종 선거를 치르며 ‘보수 진보’의 이념구도가 형성됐다. 더 현실적으로는 ‘부패하지만 능력 있는 후보, 정의롭지만 무능한 후보‘의 구도로 좁혀진다. 일부 정치 전문가들은 이 둘을 합해 ’부패한 보수 무능한 진보‘의 프레임을 구성한다.
한국은 1987년 민주화 항쟁을 거치며 민주주의가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으며, 이후 선거에서는 ‘누가 더 정의로운가’의 이슈가 선거를 지배했다. 그래서 후보의 불법자금 수수, 혼외 여인, 편법 재산축적과 상속 등이 선거를 지배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인가 유권자들의 생각이 달라진 것 같다. ‘정의로운 후보’보다는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줄 수 있는, 능력 있는 후보’에 무게중심이 좀 더 많이 실린다는 것이다.
4·29 재보선에서 야권이 스스로의 정의로움에 기반해 단골메뉴로 내세운 ‘정권 심판론’은 통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1주년과 성완종 리스트 사건을 계기로 야권은 정권 심판론을 내세웠으나, 성완종 전 회장의 참여정부 시절 특별사면 의혹과 ‘국가적 재난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여론이 등장하며, 또 힘을 잃었다. 그보다는 ‘유권자를 위해 작은 것이라도 해줄 수 있는 힘 있는 여당 후보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더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가 터진 이후 중산층과 서민의 경제적 고통은 아직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부(富) 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며, 심리적 박탈감이 커지며 세대간 갈등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부유층은 경제위기 이후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가격이 급등하면서 재산이 늘었으나, 중산층과 서민은 자산가격 상승 기회를 이용할 기초자산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소득격차가 더욱 커졌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한동안 과도한 실적에 취해 근원적인 경쟁력 강화 노력을 게을리했다가 지금 된서리를 맞고 있다. 그 여파는 고용 불안과 국민 소득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이번 재보선을 통해 드러난 것은, 유권자들이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정의로움보다는 “현실의 어려움과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는 유능함에 조금 더 마음이 쏠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유권자의 심리는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