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그래도 '개천에서 용' 이 나와야 한다

서정아 부국장겸 경제부장
2015.05.19 06:40

"지균으로 들어온 애들 보다는 서울 특목고 애들이 확실히 잘해요"

서울대에서 1학년생에게 강의를 한다는 강사가 전해준 말이다. 지균은 '지역균형선발'을 줄여서 부르는 말로, 서울대가 입학생중 대도시 집중이 심화되자 도시 농촌간 교육격차를 줄이고, 우수한 지역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지난 2005년에 도입한 제도다. 그러고보니 딱 10년이 된 전형이다.

사석에서 서울 강남의 학부모들이 이 지균을 못마땅하게 말하는 것을 여러번 들었다. 지방에서 전교1등한 애가 강남오면 반에서 1등도 못할텐데 지균으로 서울대 들어간다는 거다. 어떤 이는 지균때문에 연고대가 서울대보다 낫다는 말을 했다. 강남출신 학생이 들어가야 할 관문을 전국으로 넓혀놨으니 불만인가 보았다. 여우가 '신 포도'를 대하는 심정이랄까.

강남 학부모 모임에서나 들을 말을 서울대 강사한테 들으니 더 뜨악했다. 더욱이 강사의 어투에는 강남 특목고 학생에 대한 호평이 깔려있어, 학생을 대하는 대학교 관계자들의 단면을 본것같아 불쾌했다.

서울 특목고에서 다방면으로 빡세게 공부하고 스펙 쌓은 애들이랑 지방에서 공부만 한 애들은 다를수는 있다. 특히 갓 입학한 1학년때는. 그러나 지균 입학생들이 처음에 좀 헤매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 주도력으로 치고 올라오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도 들었다.

마침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이를 뒷받침해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김희삼 연구위원이 발표한 '사회 이동성 복원을 위한 교육정책의 방향'이다. 지균으로 들어온 학생들의 성적이 4학년때까지 비약적으로 향상되는걸 한눈에 볼 수 있는 그래프다.

김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지역균형선발제도로 들어온 학생들은 1학년 첫학기에 일반 전형생들과는 비슷하지만, 특목고 출신 중심의 특기자전형 학생들보다는 낮은 학점을 보였다. 그러나 4학기 정도의 조정기간이 지난 후에는 더 높은 성적을 거두었다.

김 연구위원은 이같은 자료들을 토대로 인생의 초기단계에서 격차가 계속 벌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회가 조기개입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타고난 잠재력이 어려운 환경에 의해 사장되고, 능력이 부족한 상속자가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자리에 오르는 것은 자원배분의 효율성과 경제성장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수있다"고 강조했다.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는 것은 이제 구문이 됐다. ‘이미 그런 사회가 됐으니 어쩔수 없다’고 기정사실화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학들은 가능성 있는 학생을 뽑아 키우기 보다는, 많은걸 갖춘 학생을 뽑으려한다. 기업들은 더 하다. 진보적 멘토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남 짓밟아 용 되는 일은 그만하고 다른 길을 찾으라”고 새 길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둘 다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몇년전 20대들에게 우상으로 군림했던 한 교수가 SNS에 “청년들이여, 개천에서 용이 되려 하지말라. 대신 그 개천을 살만하게 바꾸자”는 취지의 글을 올린 적이 있다. 나도 일견 그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격한 20대들의 반응을 접하고, 그 지점에서 나도 새로 돌아보게 됐다.

20대들은 그 교수의 발언에 ‘좋아요’ 대신 비판의 의견들로 답했다. “486세대 자기들은 누릴 것 다 누려놓고, 우리는 그냥 개천에 살라는 것이냐” “우리도 용 좀 돼봅시다” “당신들이 할 일은 개천 가꾸라고 할게 아니라, 용이 될 기회를 주는 것” 이라는 성토가 이어졌다.

새삼 10~20대들의 간절한 욕망을 느꼈다. 이제 사회에 진입할 세대의 너무도 당연한 야망과 욕구들.. 기득권자들이 맘대로 ‘개천 용’에 대해 정의하기 보다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기회를 열어주는 것이 더 시급해보인다. 여기저기 개천에서 용이 많이 나오는 사회가 역동적이다. 20대가 성공의지를 불태워야 나라도 도약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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