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 시평] 위기가 반복되는 이유

손동영 기자
2015.06.19 07:16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길에서 자동차가 달려오면 일단 피하고 볼 일이고 불이 붙으면 물을 부어 끄는 것이 상식이다. 불편한 사람과의 만남은 피하고, 교통체증이 심하면 지하철을 이용하거나 걸으면 되고, 질병에 걸리면 병원을 찾아 치료받으면 된다. 위기와 그 원인이 눈에 보일 때 해결방법은 원인을 제거하거나 회피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위기는 원인이 바깥이 아닌 안에 도사리고 있을 때 발생한다. 사람과의 관계에 불화를 일으키는 원인이 밖에 있다면 문제를 야기하는 사람이나 상황을 피하면 되지만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경우엔 얘기가 달라진다. 자신이 문제의 원인임을 자각하는 일은 심리적 불편함을 초래하는데 우리의 마음은 이러한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현실왜곡을 감행하기도 한다.

한 실험에 참가한 대학생들에게 단순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작업을 하게 한 후 다음 순서 참가자에게 재미있었다는 말을 전하도록 했다. 작업이 재미있었다는 말을 하는 보상으로 1달러, 20달러, 혹은 0달러가 무작위로 주어졌고 마지막에는 해당 작업에 대한 본인의 태도를 평가했다.

직관적으로 보상액수가 많을수록 작업에 대한 태도도 좋아질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참가자들은 20달러를 받았을 때보다 1달러를 보상으로 받았을 때 작업을 훨씬 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아마도 겨우 1달러의 보상을 받자고 동료에게 ‘거짓’을 말하는 것에 마음이 불편했을 테고 “그리 지루하지 않고 할 만한 일이었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해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한 결과일 것이다.

흡연의 해로움에 관한 정보를 접한 흡연자는 종종 정보의 진위를 의심하거나 중요성을 과소평가한다. 사이비 종교에 빠진 많은 사람은 교주의 예언이 허구로 밝혀진 후에도 신앙을 포기하기는커녕 더 깊이 빠져들곤 한다.

소비자들은 터무니없는 가격에 물건을 사고 나서도 그 정도 값어치를 하는 물건이라고 스스로를 안심시킨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의 문제는 언제나 운이 없거나 환경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을 사실대로 인정하기에는 초래되는 불편함이 너무 크기에 차라리 현실을 부정하거나 왜곡하여 마음의 안정을 얻으려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생각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현실을 뒤틀고 왜곡하는 것에 능하다. 험난한 삶 속에서도 낙관적인 마음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이런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때론 이로 인해 더 깊은 수렁에 빨려들기도 한다.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의 예기치 않은 확산으로 인해 대한민국 정부관료와 정치인, 국민들은 지금 큰 혼란에 빠져 있다. 위기의 근본원인을 안에서 찾자니 심리적 부조화를 감당하기 힘들고 밖으로 돌리자니 마땅한 대상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상황에서 남은 선택은 현실을 축소하고 비트는 것뿐인 것처럼 보인다. 전염병 확산의 심각성을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얘기하고 대다수 사람의 우려나 적극적인 대응을 불필요한 호들갑으로 깎아내린다. 심지어는 관광객 유치를 위해 정부가 보증하는 메르스보험까지 등장했다. 위기의 증상과 피해 결과만이 도처에 널려있는데 누구도 근본원인을 대면하려 하지 않는다. 이런 풍토에서 유사한 위기가 이어지는 것은 사실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위기해소의 기본은 근본원인을 찾아내고 직시하는 것이다. 원인이 내 안에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해결책도 의미가 없다. 사람들의 불안을 잠재우는 유일한 방법은 실패의 원인 소재를 파악하고 그로부터 배워서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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