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블랙프라이데이와 육룡이 나르샤

황희정 기자
2015.10.09 02:36

지난 여름 일본 오키나와에 갈 일이 있었다. 일본어로 적힌 간판들을 보니 일본에 왔다는 게 실감이 났다. 한 상점을 지나고, 두 상점을 지나고…. 오키나와 중심가를 걸어가면서 우리나라와 차이점을 느꼈다. 영어로 된 간판을 찾기 힘들다는 것. 일본어에는 까막눈인 탓에 처음에는 적잖이 당황했으나 행인에게 지도를 내밀며 물어보고 인터넷 검색도 하면서 길을 찾아갔다. 그렇게 일본어에 점점 친숙해졌다. 내가 일본에 왔구나, 실감한 건 일본어 간판의 역할이 컸다. 일본어로 된 간판은 불편한 게 아니라 일본어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

일본에는 일본어로 적힌 간판이 많은 것이 당연한데도 왜 영어로 된 간판이 적은 게 이상하게 생각됐을까. 우리나라는 관광지뿐 아니라 시내 곳곳에서도 영어로 된 간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명동만 가도 영어로 된 간판이 즐비하다. 정부가 시행하는 사업 역시 영어로 된 이름이 많지 않은가. 한창 진행 중인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도 그 뜻을 모르는 사람에겐 그저 ‘한국의 검은 금요일’일 뿐이다.

최근 방송을 시작한 ‘육룡이 나르샤’라는 드라마가 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알아보려는 사람들로 한동안 ‘육룡이’ ‘나르샤’ 등이 포털사이트 실시간검색어에 오르내렸다. ‘육룡이 나르샤’는 ‘용비어천가’ 1장 첫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육룡은 여섯 마리 용, 나르샤는 ‘날아오르다’의 순우리말이다. 이 드라마 제목이 실시간검색어에 올랐다는 게 영어에만 익숙해져 우리말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는 방증 아닐까. 한글 창제 후 첫 한글문헌인 ‘용비어천가’는 몰라도 사는데 아무 지장 없지만 영어를 모르면 학교 졸업도, 취업도, 길거리 간판 하나 읽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10월에는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말고도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는 날, ‘한글날’이 있다. 2013년 한글날이 공휴일로 재지정되면서 이번주 금요일부터 3일간 황금연휴를 맞게 됐다. 한글날이 공휴일로 재지정된 것은 그만큼 그날이 갖는 의미가 크다는 뜻일 테다. 훈민정음 반포 569돌인 이번 한글날을 맞아 정부는 다양한 행사를 준비했다. 1년에 한글날 하루 반짝 한글에 대한 관심을 높일 게 아니라 초·중·고교 국어수업 늘리기를 비롯해 영어보다 낯선 한글이 되지 않도록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노력들이 이뤄져야 한다.. hhj2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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