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기사로', '검사는 공소장으로',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한다." 법조계에서 오래 전부터 회자돼 온 말이다. 그런데 최근 검찰의 2인자로 불리는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이 공개적으로 법원 판결을 비판하고 나섰다. 공소장 대신 기자회견을 자청해 강영원 전 석유공사 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을 비판한 것이다. "회사에 5500억원의 손해를 입히고 1조3000억원의 국고 손실을 초래했는데,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단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게 이 지검장의 발언 요지다.
그동안 검찰이 공개적으로 법원 판결을 비판한 사례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 지검장의 회견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재판부의 판결은 존중돼야 한다'는 점에서 법조계에선 이 지검장의 회견을 비판하는 이도 적잖다고 한다.
석유공사 강 전 사장에 대판 판결과 지검장의 회견을 보면서 기자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석유공사의 하베스트(하비스트)에너지 투자 손실은 머니투데이와 기자에게 특별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6년여전인 2009년 10월 말과 11월 초 머니투데이는 석유공사의 하베스트 인수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단독기사를 잇따라 보도했다. 검사장이 최근 지적한 내용을 6년여 전에 이미 기사로 말한 것이다. 당시 기자는 정경부장을 맡아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와 석유공사를 출입하는 두 기자의 특종 기사를 데스크 봤다.
이 보도를 하게 된 계기는 이랬다. 당시 지경부와 석유공사가 하베스트 인수를 자화자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보도자료를 냈다. 그런데 보도자료에 적힌 하베스트 인수 가치 등의 각종 수치가 석연치 않고 모호한 구석이 많았다. 그래서 담당 기자들에게 확인을 지시했고, 두 기자는 캐나다 증시보고서를 분석하고 현지 언론, 국내 M&A 업계 등을 취재한 결과를 기사로 썼다. 그게 바로 2009년 10월29일 머니투데이 1면 머릿글을 장식한'석유공사, 너무 퍼준 해외 M&A'였다. 이어'석유공사 뒷감당에 혈세 2조','석유공사, 하베스트 확인매장량 부풀렸다'. ;'석유공사, 불리한 옵션 또 숨겼다;'등을 잇따라 보도했다.
머니투데이 보도가 나간 후 논란이 커지자 정책 당국자들과 석유공사는 인수 계약 내용을 다시 꼼꼼히 들여다보기는커녕 해명하기에 바빴다. 당시 지경부 장관은 국회에서 주승용 민주당 의원이 "부채가 많고 인기가 없어 누구도 인수를 할 의향이 없었는데 지나치게 비싸게 계약했다"고 지적하자 "47%의 경영권 프리미엄은 적정한 것으로 본다는 것이 대체적인 전문가들의 견해"라고 밝혔다. 인수 업무를 담당했던 석유공사 실무진 중 한명은 "머니투데이 석유공사 담당 기자들이 무지해서 쓴 기사"라며 인식 공격성 발언을 자신의 SNS에 올리기도 했다.
1심 재판부는 강 전 사장의 무죄 근거와 관련, 인수 당시 하베스트가 중대한 장래 손실 가능성을 보이지 않은 점, 인수 이후 석유공사가 입은 손실은 사후적 요인들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는 점 등을 들었다. 하지만 머니투데이 기자들도 인수 계약 당시 취재를 통해 손실 가능성을 알 수 있었는데, 석유공사가 당시 이를 알 수 없었다고 주장하고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인 것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검찰이 항소를 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에 항소심에서 이 부분에 대한 시시비비가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을 떠나 석유공사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어야 하며, 어떤 식이든 페널티를 줘야 한다. 1조3000억원의 혈세를 날렸는데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