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 시평] 상사의 괴롭힘과 성과주의

이근덕 기자
2016.07.13 04:31

일본 사회보험노무사의 선진적 사회보험 운영을 배우고 저성과자 관리가 어떠한 추세로 진행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일본 오사카사회보험노무사회를 방문했다. 방문 이틀째인 지난 8일 사회보험노무사인 지인에게 얼핏 도쿄 경찰관 2명이 자살한 사건이 충격을 주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그냥 흘려들었는데 귀국 후 검색해 보니 얼마 전 서울남부지방검찰청의 젊은 검사가 부장검사의 지속적인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과 매우 유사했다.

그 사건은 도쿄의 한 경찰서에서 지난해 10월과 올해 2월 잇달아 2명의 경찰관이 같은 장소에서, 권총이라는 같은 방법으로 자살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두 경찰관이 각각 자살하기 전 남긴 메모에 오랜 기간 같은 상사에게 폭언과 모욕에 시달려왔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는 점이다. 일본 경시청은 직원 3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뒤 파와하라(power harassment-직장 내 상사의 괴롭힘을 지칭하는 일본의 신조어)는 없었다고 결론 내리고 그 상사가 사직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려 했지만 우리나라 젊은 검사 사건처럼 그 파장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분위기다.

‘직장 내 괴롭힘’(Bullying at Workplace)은 직장 내 동료나 부하직원에게 지속적으로 공격적·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개인이나 집단의 행위를 말한다. 그중 고용현장에서 가장 문제시되는 것은 단연 권력형 괴롭힘(power harassment)이며 서울 남부지검의 검사와 도쿄의 두 경찰관도 그 피해자라 할 수 있다.

권력형 괴롭힘이 심각한 것은 단지 언어적 폭력, 물리적 학대뿐 아니라 감당하기 힘든 업무 맡기기(또는 하찮은 업무 맡기기), 원치 않는 업무로 대체하기, 업무수행에 필요한 정보를 차단함으로써 골탕 먹이기, 악의적인 소문으로 왕따시키기 등 조직에서 부여된 지위와 권한을 이용한 괴롭힘이기 때문이고 또 ‘업무상 필요성’이라는 방패에 가려져 피해자가 대응하기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성과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직장이라면 그 괴롭힘의 위력은 더 커진다. 성과가 가장 중요하기에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부차적인 것이 되고 심지어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조차 성과만 내면 은연중에 불가피한 해프닝으로 처리되어 보호의 대상이 되어버리니 말이다. 더 큰 문제는 그 반복된 경험들이 조직문화로 굳어진다는 점이고 그것은 곧 망해가는 지름길이다.

직장 내 괴롭힘은 예전에도 존재했다. 아니 더 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라는 사회적 인식도 없었고 피해자들 역시 쉬쉬했을 뿐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니 묻혀버렸다. 하지만 이제 직장 내 괴롭힘, 특히 권력형 괴롭힘의 문제는 직장뿐 아니라 하도급 관계에서 그리고 ‘갑’과 ‘을’이 존재하는 모든 사회관계에서 여론의 몰매를 맞고 책임을 추궁당하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

이는 단지 괴롭힘의 피해자들이 더 이상 참지 않고 저항하는 사례가 많아진 것도 그 이유가 되겠지만 다른 한편 소위 ‘갑질’을 포함한 권력형 괴롭힘의 문제를 청산하지 않고는 우리 사회가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는 사회적 인식이 형성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권력형 괴롭힘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도 중요하겠지만 건전한 조직문화 정착을 위한 의식개혁이 더욱 절실한 시점이다.

노동자가 직장생활에서 행복을 찾는다는 것은 애초에 욕심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행복을 얘기해야 할 때다. 다가올 4차 산업혁명의 시대는 우리에게 ‘행복할 때 생산성이 올라간다’고 제시한다. 직장에서 노동존중의 사상이 사라지고 직장생활의 행복을 얘기해야 할 때 권력형 괴롭힘에 갇혀 있는 한 우리에게 밝은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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