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인간은 두 가지 상충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 하나가 소속감의 욕구고 다른 하나가 자율성의 욕구다. 그래서 한편으로 우리는 소속감의 욕구를 가족이나 친구 혹은 연인처럼 정서적으로 가까운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충족한다. 다른 사람과의 상호의존적인 관계는 혼자 있을 때 겪을 수 있는 외로움과 고립감을 해소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또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한 불필요한 의존에서 벗어나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행동하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자율성에 대한 욕구는 잘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탈피해서 자신의 의지나 판단에 따라 살고 싶은 욕구다. 그렇기 때문에 이 욕구는 서로를 개별적인 존재로 분리해주는 문화적 특성이나 물리적 환경 혹은 개인적 역량에 달려 있다.
우리 사회는 매우 관계중심적인 사회다. 그래서 우리는 출신 지역이나 학교 혹은 연령을 기반으로 서로 유사한 사람끼리 친밀한 관계를 향유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가까운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외로움과 고립감을 해소하고 인간적 소속감과 일체감을 누리기는 상대적으로 쉽다. 일과를 마치고 삼삼오오 만나 저녁시간을 즐기는 우리의 사교활동은 바로 이와 같은 관계적 특성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이와 반대로 우리가 개인적인 자율성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 문화적으로도 우리는 집단주의적인 특성을 가진 사회에서 산다. 그래서 개인적인 독립성이나 자율성보다 집단 차원의 의사결정이나 행위방식을 선호한다. 또한 지리적으로도 우리는 도시를 중심으로 좁은 지역에 집중적으로 밀집해서 산다. 가령 서울과 수도권에는 물리적 면적에 비해 수많은 사람이 밀집해 있다. 이와 같은 특성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과 상관없는 자기 나름의 삶을 살기 어렵다.
아침저녁으로 출퇴근할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쇼핑을 하거나 외식이라도 할라치면 사람들에게 치이기 일쑤다. 출근버스나 지하철에서 개인적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고 자동차라도 가지고 가면 시도 때도 없이 막히는 도로와 심각한 주차난이 우리를 기다린다. 심지어 요즘처럼 무더운 날씨를 벗어나기 위해 피서라도 가면 그것 역시 사람과의 치열한 전쟁이다. 우리 사회에서 휴가는 여가가 아니라 또 다른 종류의 중노동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제도적으로도 우리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우리 사회는 구조적으로 위계적 특성이 강해 각자가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다. 중앙정부의 결정이 그 아래에 있는 부서는 당연하고 저 아래 말단에 있는 사람들의 삶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다양한 조직으로부터 불합리해 보이는 처우를 받더라도 그것을 손쉽게 해결할 수 없다. 거대한 조직이 우리 개인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자율성의 심각한 훼손은 사람들에게 심리적으로 매우 부정적인 상태를 야기한다. 그들은 위협감이나 긴장을 경험할 수도 있고 좌절과 짜증 혹은 적어도 불쾌를 겪을 수 있다. 그 결과 사람들은 타인에게 무관심하거나 심하면 공격적인 반응을 보인다.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에 관련 주민들이 목숨을 걸고 반대하는 현상이나 도로에서 벌어지는 보복운전, 지하철이나 피서지에서 생기는 실랑이도 알고 보면 한편으로는 그들의 삶에서 자율성의 상실이 가져오는 반작용이다.
자율성을 확보하는 한 가지 방법은 권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많은 연구가 입증했듯이 큰 경제력을 지닌 사람은 이와 같은 물리적·사회적 그리고 제도적 구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적으로 모든 사람이 다 경제력을 높일 수는 없는 법이다. 사회적 구조를 바꾸고 물리적 환경의 조건을 바꾸는 것이 우리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길이지만 그것도 참으로 요원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