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지금이 5공 때도 아니고…"

송기용 산업2부장
2016.11.08 04:30

"지금이 5공 때도 아니고…" 상식을 벗어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흔히들 하는 얘기다. '최순실 게이트'로 부르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부르건 최근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를 보면 30여 년전 5공 시절이 연상된다.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각종 비리 속에서 2013년 벌어졌다는 이미경 CJ그룹 부회장 퇴진 압력은 '화룡점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부회장이 버틸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검찰)수사까지는 안 갔으면 좋겠다"며 조폭 수준의 협박을 한 인사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있던 조원동씨로 드러났다. 그는 "VIP로부터 직접 들었다, VIP의 뜻이다"라며 이 부회장 사퇴요구가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청와대가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기금 출연을 압박한 정황은 드러났지만 대기업 경영권까지 간섭한 정황이 포착된 것은 처음이다. 청와대라는 최고 권부가 대기업 돈을 뜯어내는데 동원됐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사기업의 경영권까지 좌지우지했다는 것은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2013년 7월 횡령·배임·조세포탈 혐의로 구속됐고, 이 회장의 경영 공백을 뒷받침했던 누나, 이 부회장 역시 청와대 압력을 못 견디고 2014년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외삼촌으로 집안을 대표했던 손경식 회장까지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을 내놔야 했다.

청와대는 왜 이처럼 집요하게 CJ 오너 일가를 압박한 것일까? 누구도 명백한 이유를 알지 못해 해석이 분분한데 대표적 친MB(이명박 대통령) 기업으로 미운털이 박힌데다 CJ가 제작한 방송·영화가 박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지적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CJ E&M 인기 프로그램 'SNL코리아'가 박 대통령을 희화화했고 같은 해 CJ가 만든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도 고(故) 노무현 대통령을 연상시켜 '친노' 인사인 문재인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다는 인상을 남겼다고 한다.

2014년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 결정적으로 찍혔다는 지적도 있다. 박 대통령이 야심 차게 '코리아 세일즈 외교'에 나섰는데 정작 언론 스포트라이트는 가수 싸이를 대동한 '한류 전도사' 이 부회장에게 집중됐다. 당시 박 대통령은 "들러리를 선 것 같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겨우 이런 이유로 대기업 오너 일가를 집요하게 끌어내렸다는 게 납득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이 지점에서 '비선 실세' 최순실이 등장한다. '문화'와 '체육' 분야를 이권추구 양대 축으로 활용했던 최순실이 대표적 문화기업 CJ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는 것이다. 당시 CJ와 갈등관계에 있던 한 기업이 최씨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도 최씨 배후설이 부각 되는 이유다.

평소 같으면 소설에서나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웃어넘기겠지만 '아바타 대통령'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사실무근으로 단정하기도 어렵다. CJ만이 아니다. 재계 서열 11위의 한진그룹도 비선 실세의 희생양이 됐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5월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자리에서 갑작스럽게 물러났다. K스포츠재단 기부를 거절하고 최씨와 연결된 스위스 회사의 올림픽 시설 수주를 거부한데 대한 보복 조치로 알려졌다. 조 회장 본인이 "언론 보도 내용이 90% 맞다"고 시인했다. 3개월 후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로 넘어가는 과정에도 최씨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대기업이 기부 압박에 시달린 것은 역대 정권에서 되풀이된 일이다. 하지만 이처럼 특정인의 사적 이익을 위해 경영권을 위협당한 것은 5공 시절 공중분해 된 국제상사 이후 첫 사례다. 사법당국은 자유시장 경제를 뿌리 채 흔든 비선실세의 행태를 명명백백하게 밝혀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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