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스텝 꼬인 가계동향조사

세종=정현수 기자
2018.09.18 03:38

정부가 지난달 말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을 취재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가계동향조사 예산이다. 올해 관련 예산은 약 28억원이다. 그런데 내년 예산으로 159억원을 편성했다. 처음 이야길 들었을 땐 귀를 의심했다.

통계조사 예산은 이렇게 갑자기 늘리지 않는다. 대대적인 개편이 있을 것이라 예상했고 실제로 그랬다. 통계청은 내년에 가계동향조사를 싹 바꾸기로 했다. 올해부터 분리했던 지출과 소득을 다시 합친다.

과거 가계동향조사는 문제가 많은 통계였다. 응답률이 낮아 통계청도 내부적으로 신뢰하지 않았다. 그래서 소득과 지출 부분을 분리하고, 분기별로 발표하는 소득조사는 올해부터 없애기로 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 국회 논의 과정에서 가계동향조사가 부활했다. 정부의 입김이 들어갔다는 걸 추정할 수 있다. 소득주도성장의 성과를 보여주는 지표 중 분기별 나오는 소득조사를 대체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이 때부터 스텝이 꼬였다. 정부의 기대와 달리 가계동향조사 결과가 나올 때마다 분배지표는 나빠졌다. 공교롭게 가계동향조사 발표와 즈음해 청와대 경제수석과 통계청장이 바뀌었다. 이제 가계동향조사는 정부의 가장 골치 아픈 통계가 됐다.

이 모든 문제는 정부가 가계동향조사를 되살리면서부터 시작됐다. 전직 통계청장들이 지속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처럼 신뢰도에 문제가 있었던 통계를 놓고 어떻게 잘 해석할지 고민해봤자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마련한 정부의 대안이 대대적으로 손질하는 것이다. 통계청은 18일 가계동향조사 개편방안을 발표한다. 분리했던 소득과 지출 부분 조사를 다시 합치는 게 핵심이다. 표본도 조정한다고 한다. 올해까지의 조사방식은 내년까지만 유지한다.

잘못된 목적지로 왔다면 길을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출혈이 크다. 예산만 하더라도 당장 내년까지만 쓰고 폐기할 통계에 28억원을 써야 하고, 새로운 통계를 만드는데 또 159억원을 써야 한다.

국회 상황을 보면 내년 가계동향조사 예산이 확정될지 여부도 장담할 수 없다. 국회의 문턱을 넘더라도 새로운 가계동향조사에는 유독 많은 설명과 주석이 달릴 것이다. 설명과 주석이 많을수록 통계는 또 다른 논란의 출발점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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