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학은 미래를 준비하고 있나[청계광장/조준모]

한국 대학은 미래를 준비하고 있나[청계광장/조준모]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2026.06.04 02:00

한국 기업 세계선두인데 대학은 뒤처져
교육 중심 운영, 연구 경쟁력은 떨어져
미래 문제 해결할 융복합 연구 필요해

한국 경제의 글로벌 경쟁력과 한국 대학의 경쟁력 사이에는 분명한 격차가 존재한다. 한국의 주요 대기업들은 세계 시장에서 상위권 경쟁력을 보이지만, 한국 대학 가운데 세계 50위권에 안정적으로 진입하는 종합대학은 드물다. 한국 경제는 수출 중심 산업화 과정에서 대기업을 축으로 성장해 왔다. 반면 대학은 산업 전략의 핵심 연구기관이라기보다 교육 중심 기관으로 운영되어 왔으며, 연구 경쟁력 축적 속도는 상대적으로 더뎠다. 기업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며 성장했지만 대학은 미래 산업 경쟁을 전제로 한 글로벌 연구 생태계를 충분히 구축하지 못했다.

미래 산업 시대의 대학 경쟁력 전략에는 여러 모델이 존재한다. 하나는 특정 분야에 연구 자원을 집중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대학 전체의 학문 생태계가 함께 성장하지 못하면 대학은 '성장의 데드존'에 빠지게 된다. 『지식의 제국』의 저자 로버트 라이시가 강조하듯, 혁신은 개별분야가 아니라 학문 간 연결과 축적 속에서 나온다. 스탠퍼드와 MIT는 공학과 자연과학뿐 아니라 경제학·정치학·법학 등 인문사회 분야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 경쟁력을 갖춘 종합 연구대학이다.

한국 대학의 미래 경쟁력을 위해서는 '베이스 캠프형 융복합 성장 전략'이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 스탠포드는 '기업가형 혁신 생태계 대학', MIT는 '공학 기반 기술혁신 대학'이라는 분명한 시그너처 브랜드를 갖고 있다. 이러한 정체성 위에서 인문사회와 자연과학이 결합된 종합 연구대학 모델이 형성된다. 핵심 분야는 대학의 연구 역량과 산업 연계 가능성을 기준으로 몇 개의 '베이스 캠프'로 설정하고, 이를 중심으로 연구 생태계를 구축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대학은 특정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학문 간 협력을 통해 새로운 연구 영역을 확장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구축되는 시그너처 특성화 연구 브랜드는 미래 인재와 첨단 산업 협력을 끌어들이는 핵심 기반이 된다.

이와 함께 기초연구 기반 강화도 중요하다. 한국의 연구개발 투자는 규모 면에서는 세계 상위권이지만 대학 중심의 기초연구 생태계는 아직 두텁지 않다. 이러한 점에서 해외 석학 유치를 중심으로 한 대형 기초연구 인프라인 기초과학연구원(IBS)과 같은 연구 기반은 계속 확대하되, 이를 산학협력과 융복합 공동연구 플랫폼으로 연결해 연구 성과가 산업과 사회로 확산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간 국내 산업·사회 혁신 생태계와의 연결성이 충분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기술혁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이공계와 인문사회 분야의 융합은 선택이 아니라 필요조건이다. 『혁신의 경제학』의 저자 크리스 프리먼이 지적했듯, 혁신은 기술이 아니라 제도·시장·문화가 결합된 결과다. 인공지능, 바이오 기술, 디지털 플랫폼과 같은 기술은 법과 제도, 경제 구조, 문화와 예술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유럽연합의 '호라이즌 유럽(Horizon Europe)' 프로그램은 정부의 대학 지원 정책으로 참고할 만한 사례다. 최근 글로벌 연구정책은 단순 기초과학 지원을 넘어 미래 산업·사회문제 해결형 융복합 연구로 이동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2027년까지 약 160조원대로 운영되는 EU 최대의 연구·혁신 지원 사업이다. 특히 공학과 자연과학뿐 아니라 법학, 경제학, 사회과학, 문화·예술 연구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이공계와 인문사회 융복합 연구를 필요조건으로 요구한다.

기업이 세계를 이끌 때, 대학이 산업·사회 혁신으로 연결되는 구조는 아직 부족하다. 한국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에는 대학의 연구 경쟁력 강화가 필수적이다. 시그너처 브랜드를 기반으로 한 베이스 캠프형 융복합 전략, 기초연구 인프라 확대와 산학협력 생태계가 함께 작동할 때 한국 대학도 글로벌 연구 경쟁 속에서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기업과 대학의 경쟁력이 연결되지 못한다면 한국 경제도 미래 성장동력을 잃을 수 있다.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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