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생 때 미국 친구들과 모여 같이 피자를 먹었다. 피자를 같이 먹을 때 생기는 어려운 문제는 몇 조각이 내 것인지와 마지막 한 조각은 누구 것이냐다. 미국 사람들은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한 친구가 ‘공정한 몫’(fair share)을 가져간다고 했다. 이 ‘공정한 몫’의 개념은 대니얼 데이 루이스가 세 번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을 때 한 수상소감에서도 나왔다. 행운에도 공정한 몫이 있는 법인데 자신이 선을 넘은 것 같다고 겸손을 보였다.
그런데 ‘공정한 몫’의 개념에는 그에 대한 우리 각자의 생각이 다르다는 문제가 있다. 대개 내 몫은 부당하게 적고 남의 것은 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규칙을 정하고 지킬 약속이 필요한데 그러더라도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변하면 생각이 달라진다.
한때 재계 2위였던 LG 창업자 고 구인회 회장은 1941년 창업할 때 경남 진주에서 담 하나 사이 이웃이었던 부호 허만정 패밀리와 65대35의 동업으로 출발했다. 구씨, 허씨 두 집안은 2004년 GS그룹이 분리될 때까지 그대로 약속을 지키면서 동행했다.
유사 이래로 경영권과 이익배분 때문에 동업이 순탄했던 사례는 별로 없지만 두 가족은 무려 57년 동안이나 아무런 문제없이 동업관계를 유지했다. 세계 최대 농업회사 미국 카길을 연상시킨다. 구씨, 허씨 두 집안은 겹사돈이기도 하다. 역시 겹사돈이었던 카길과 맥밀런 패밀리처럼 사실상 한 집안이었다.
카길은 약 50명의 가족이 지분을 가진다. LG와 GS도 금감원에 공시된 특수관계인 내역을 보면 그 수가 다른 기업보다 많다. 복잡한 지분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계열분리를 결정했다.
분리 시에도 65대35 규칙을 따랐다. 분쟁이나 잡음없이 서로 양보하고 타협한 것으로 유명하다. LG전선을 성장시켜 경영한 허씨 측이 구씨 측에게 양보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에 대해 구씨 측은 GS칼텍스를 포함한 서비스업종을 허씨 측에게 넘겼다. 분리 후 5년간 경업하지 않기로 약속했고 이를 지켰다. LG는 대우건설 인수전에 불참했고 지금도 공사는 대개 GS건설에 발주한다.
골드만삭스의 골드만 패밀리와 리먼브러더스의 리먼 패밀리도 구씨, 허씨 패밀리 못지않게 절친했다. 1906년 제휴를 시작할 때 50대50으로 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후손과 경영자들이 각자의 역할을 고평가하기 시작하면서 불만이 생겨 30년 만에 결별했다. 그리고 서로 적이 되었다. 피자를 같이 먹지 않으면 적이 될 일도 없다.
LG는 5대 재벌 중 총수가 사법처리를 당한 적이 없는 유일한 그룹이고 지배구조 모범기업이다. 2016년 국정농단에 대한 국회 청문회에서도 고 구본무 회장의 소신 진술이 화제였다. 정경유착을 국회에서 입법으로 막아달라는 발언이 백미였다. 매사 원칙대로 하는 경영인의 자신감이 묻어났다. 경영권 승계도 마찬가지다. 그 흔한 상속분쟁도 없고 엄격한 장자승계 원칙에 따라 승계가 일어난다.
올해도 많은 기업이 (공동)창업할 것이다. 일부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것이다. 창업자의 후손들이 생기고 전문경영인들이 합류할 것이다. 회사 안팎에서는 언제나 크고 작게 서로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것이다. 승계는 분쟁을 부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말의 ‘염치’에 해당하는 공정한 몫을 따질 때 상대편 관점의 공정을 먼저 생각하고 오래 같이 가려면 신뢰에 기초한 양보가 좋다는 것을 LG와 GS의 역사가 가르쳐준다. 경영진은 우리 회사와 주주 이익에 최선을 다하라는 상법은 바뀌지 않겠지만 지금은 사회적 가치가 주주 가치의 일부인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