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식 문제 해결법…우보천리[오동희의 思見]

오동희 기자
2021.03.30 14:35
(서울=뉴스1) 사진공동취재단 = 최태원 신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29일 서울 중구 상의회관에서 취임식을 대신해 열린 '비대면 타운홀 미팅' 후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1.3.29/뉴스1

"1년 쯤 지나면 정확히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 29일 첫 기자간담회를 가진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 회장)에게 "1주일에 한두차례 대한상의로 출근한다는데 SK와 상의의 업무 분배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기자의 가벼운 질문에 대한 그의 진지한 답이다. 최 회장의 성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답이다.

언뜻 보면 국내 3대 그룹의 총수인데 무어라 말한들 문제가 될까. '대략 반반, 혹은 9대1, 8대 2, 7대 3, 6대 4' 등 느낌이나 감으로 생각나는 대로 답해도 될 듯한 질문인데 "일단 해보고, 재어 보고 말하겠다"고 한다.

최 회장은 이날 처음 갖는 대한상의 출입기자단과의 공식 간담회에 긴장한 듯 모든 대답에 이처럼 신중했다. 그러다보니 무엇 하나 똑부러진 답이 없는 듯했다. 하지만 그 대답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그 속에는 똑부러진 답을 찾아가는 그만의 신중한 루틴(습관적으로 하는 동작이나 절차)이 있다.

간단히 정리하면 거대 담론으로는 해답을 찾기 어려우니 소통을 통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디테일하게 분석해 맞는 답을 찾자는 것이 그의 방법론이다.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런 방법론으로 길을 찾다보면 결국 그것이 지름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게 최 회장의 생각이다.

질병을 고치는 의사로 비교하면 그는 오래 경험을 기반으로 감각적으로 환자의 건강상태를 체크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는 MRI(자기공명장치)나 CT(컴퓨터단층촬영장비) 등의 첨단의료장비로 환자의 세부 상태를 정밀진단한 후 많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의견을 내는 분석형 의사와 같다. 이날 그는 우리 경제상황을 건강에 비유해 진단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도했다.

최 회장은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모르는 것은 일단 알아보고 판단하는 경청의 자세를 유지했다. 대한상의에서의 역점사업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도 "의견을 듣고 어젠다(주제)가 나오면 다시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기업이 어떻게 미래에 변화와 혁신을 가져가는 것이 좋을지를 찾겠다"고 답했다. '기업규제 철폐'나 '샌드박스 강화', '기업하기 좋은나라' 등등 당장 기업의 입에 달게 느껴지는 소리는 없었다.

규제에 대한 시각과 접근법도 다르다. "무조건 반대한다고 규제가 없어지겠느냐"고 반문하는 그에게 기업들이 당황할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규제의 진짜 이유를 찾아 그 근본적 원인을 해소하는 것이 옳다고 말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오해가 있다면 풀고 기업의 행동에 잘못이 있으면 고치는 방향으로 가겠다고 하는 그에게서 신뢰의 빛이 보인다.

최 회장이 기자간담회 중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 중 하나가 데이터다. 데이터를 계속 모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것. 스타트업IT 위주로 서울상의 부회장단을 개편한 이유도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론 중에 데이터와 새로운 시각을 갖고 소통하는 IT식 어프로치에 능숙한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그는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는 것을 믿는 편으로 보인다. 어떤 것이든 대충 보면 쉬워보이지만 제대로 해결하려면 세부상황 속에 숨어 있는 디테일한 문제점들로 인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나 샌드박스, 이익공유제 등등의 이슈에 대해 최 회장은 자신의 생각을 바로 답하지 않았다. 큰 주제를 뭉뚱그려서 이야기를 하면 해법을 찾을 수 없으니, 큰 주제의 디테일을 파고 들어, 데이터를 분석하고 그 속에서 해법을 찾아야 답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미중 무역 분쟁의 해법, 기부문화에 대한 생각, 대기업 총수들과의 회동, 늘어난 개인투자자들에 대한 인식 등에서도 마찬가지 생각을 가졌다.

기자간담회가 끝난 후 최 회장의 말에 똑부러진 답이 없다고 하자 행사장에 있던 SK 관계자들은 "최 회장의 스타일이 답을 바로 하는 게 아니라 답을 찾는 길에 대해 이야기하곤 한다"고 했다.

그의 문제해결 방법론은 문제 앞에 서서 소통을 통해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디테일하게 분석해서 각각의 해법을 찾고, 이해시키는 것이다.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지만 바른 답을 찾기 위해서는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가겠다는 것이다. 그게 느리더라도 멀리 갈 수 있는 우보천리(牛步千里)의 길이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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