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전의 쿠팡, 신사동에서의 기억[우보세]

정현수 기자
2021.04.01 05:00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2010년 7월의 일이다. 회사 선배가 "하버드대 3총사의 벤처 창업 소식이 있다"며 인터뷰를 주선했다. 그렇게 서울 신사동에 있는 벤처회사를 방문했다. 가정집 같은 구조의 작은 사무실로 기억한다. 회의실에서 3명의 창업자를 만났다. 사업 아이템은 당시 '뜨고 있던' 소셜커머스였다. 첫 번째 상품으로 워커힐 수영장 할인권을 준비했다며 곧 사이트를 오픈할 것이라고 했다. 회사 이름은 쿠팡. 맞다. 모두가 알고 있는 그 쿠팡의 11년 전 이야기다.

사업 내용은 새로울 게 없었다. 당시 소셜커머스 업체만 수십개였다. 하지만 사업을 준비하던 창업자들은 좀 다르게 보였다. 그들은 "사람들의 생활을 다채롭게 하겠다"며 비전과 미래전략을 수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수많은 벤처회사 중 하나로 생각했다.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하버드대 3총사 벤처 창업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옛 기억을 더듬어 찾아보니, 한국에서 쿠팡을 다룬 첫 기사로 남아 있다.

1년 뒤 김범석 쿠팡 대표를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다. 김 대표는 설립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2년 내 나스닥에 상장할 것"이라고 했다. 쿠팡은 이후 차근차근 단계를 밟았다. 투자를 받아 로켓배송을 선보였고 사업을 확장했다.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라고 생각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 쿠팡의 비전은 뉴욕증시 상장으로 결실을 맺었다.

2010년 7월 쿠팡 창업자들의 모습. 사진 제일 오른쪽이 김범석 쿠팡 대표다 /사진제공=쿠팡

쿠팡 이야기를 꺼낸 건 비전과 미래전략을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비전을 세우고, 단계를 밟고, 실행에 옮기고, 마침내 결실을 맺는 출발점으로서 비전. 오늘을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비전은 무엇일까. 10년 후, 20년 후를 내다보는 대한민국의 미래전략은 무엇일까. 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도 과거 정부처럼 중장기 미래전략인 '미래비전 2045'를 발표하고 '혁신적 포용국가'를 청사진으로 내세웠지만 국가 미래전략이 있다는 사실조차 대부분 알지 못한다.

심지어 직무유기에 빠졌다. 대한민국의 미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가 국민연금이다. '더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 개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국민연금의 미래는 없다. 이를 위해 5년마다 국민연금 재정전망과 개혁안을 발표하도록 법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2018년 정부와 국회는 국민연금 개혁을 포기했다. 지난해 사석에서 만난 모 국회의원은 "선거를 앞두고 표 까먹을 일 있냐"고 했다. 다음 5년이 되는 해는 2023년이다. 이듬해 총선이 있다. '표 까먹을' 일에 나설 사람은 없을 것이다. 5년 단위의 국민연금 제도개선안은 실익 없이 혼란만 키운다.

저출산과 고령화, 지방소멸 등 산적한 대한민국의 구조적인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올해도 기록적인 저출산이 예상된다. 2년 연속 합계출산율 1위인 전남 영광군조차 인구가 줄고 있다. 베이비부머의 은퇴로 고령인구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지만 노인 연령 상향조정과 정년 연장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지방소멸 역시 '정해진 미래'였지만 뿌리 깊은 수도권 중심의 국가관은 문제 해결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지방소멸의 잣대 중 하나인 인구 3만명 미만인 기초지자체만 18개에 이른다. 오죽하면 광역단체들이 먼저 행정통합을 이야기한다. 파격적인 지원을 고민할 때가 됐다.

참여정부가 2006년 발표한 국가 미래전략인 '비전 2030'을 오랜만에 꺼내봤다. 보고서는 "미리 준비하지 못해 지금 저출산, 연금 문제 등에 직면했다"며 "향후 10~15년까지의 대응이 우리의 미래를 좌우한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15년이 지났다. 15년 전의 미래는 현재가 됐지만 바뀐 게 많지 않다. 앞으로 15년 후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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