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적 석유기업 엑손모빌에서 이례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5월26일에 열린 주주총회 표결 결과 '엔진넘버원'이라는 헤지펀드가 지명한 이사 후보 2명이 선출된 것이다. 헤지펀드 측은 엑손모빌이 화석연료 위주 사업에서 벗어나 기후위기에 대응해 재생에너지 시장에 더 힘을 쏟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를 통해 주주들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엑손모빌 지분율이 0.02%에 불과한, 작은 행동주의펀드가 주총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지지가 있었다. 전통적 석유기업의 주주총회 반란 사건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투자가 새로운 시장의 규칙으로 확고히 잡았다는 점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2021년 초부터 한국 경제계에서도 큰 화두가 된 E(Environment)S(Society) G(Governance) 경영은 영업이익으로 대표되는 재무적 지표가 아닌 비재무적 지표를 기업 경영의 주요 성과로 삼는 경영방식을 말한다. 앞서 엑손모빌 주총에서 친환경 행동주의펀드를 지지한 블랙록의 CEO 래리 핑크가 본격적인 ESG 경영의 포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2020년 투자자에게 보낸 연례 서한에서 "기후변화와 지속가능성을 투자의 최우선 순위로 삼겠다"고 공표했기 때문이다.
ESG는 갑자기 등장한 개념이 아니다. 1987년 유엔환경계획(UNEP)이 브룬트란트 보고서에서 지속가능 발전을 의제로 제시한 이래 2005년 유엔글로벌콤팩트(UNGC)가 책임투자원칙(UN PRI)을 정립했고, 2016년 비영리기구 GRI가 기업의 지속가능 경영보고서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보고표준인 GRI 스탠더드를 만들었다. 이러한 기조 아래 수년 전부터 유럽과 미국 연기금 등은 투자의 주요 고려요소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ESG를 투자와 경영의 원칙으로 삼은 것이다.
일각에선 미국이나 유럽연합(EU)이 중국 등을 견제하기 위해 ESG 경영을 내세운다고 하지만 사태가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지금 ESG가 세계적 화두로 떠오른 것은 그것이 우리 사회의 절박한 요구와 지구적 위기를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다. 조금씩 가열되는 냄비 안 개구리의 운명이 될지 모르는 인류는, 생사를 좌우할 거대한 파고인 기후변화에 뒤늦게 진지하게 대처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자. 몇십 년 후 지구 온도가 2도 이상 올라가면 현존하는 생물종의 절반이 사라질 것이라고 하는데 그 최악의 상황에서 우리가 어떤 '시장'을 유지할지는 알 수 없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보여준 재앙 역시 성장하는 시장이란 사회적·환경적 안정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일개 기업의 입장에서는 가혹한 시장환경에 1년 후 생존도 담보하지 못하는데 재무제표에 더해 사회나 환경 문제까지 경영지표로 삼아야 하는지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그 의문과 별개로 우리 역시 ESG를 새로운 규칙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당장 2025년부터 자산 2조원 이상 코스피시장 상장사부터 의무적으로 ESG 정보를 공개하고 2030년 이후에는 전체 코스피시장 상장사로 공시가 확대된다. 시장 참여자들은 기업의 운명이 사회적 토대 위에서 지구 공동체와 함께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 합의해 나가고 있다. 투자자들과 경영자들은 시장을 단기가 아닌 장기 지표로 볼 것을 서로에게 설득하고 그렇게 하는 것만이 결국 시장을 지킬 수 있다는 점을 선언하고 있다.
ESG 경영과 투자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며 우리가 준비해야 할 미래가 어떤 것인지 그 방향을 정확하게 가리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