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여 전에 정약전이 집필한 '자산어보'(玆山魚譜)가 최근 설경구 주연의 영화로 재탄생했다. 비록 주요 스토리는 픽션이기는 하지만 정약전이 19세기에 '자산어보'를 어떻게 집필하게 됐는가를 연기파 배우들이 호연한 덕택에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다.
'자산어보'는 정약전 선생이 흑산도 유배 당시 '창대'라는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 흑산도 연해의 수족(水族)을 관찰하고 기록한 일종의 어류 DB(데이터베이스)다. 오늘날에도 많은 어류학자가 '자산어보'를 참고할 정도로 그 가치가 높다. 상세하고 세밀하게 쓰여진 데다 이전까지 어류를 이처럼 체계적으로 분석한 책은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정약전은 흑산도에 유배당해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은 궁핍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그는 주변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고, 어업이 주류인 흑산도 주변의 어족을 관찰하고 분류해 그 특징들을 생생히 기록함으로써 후대에 큰 교훈이 되는 책을 서술하게 된 것이다.
구암 허준 선생이 쓴 '동의보감'도 일종의 의학 관련 DB다. 당시 의학 관련 정보가 부실한 데다 산재돼 있는 것을 정리할 필요성이 있다고 느낀 선조의 왕명을 받아 허준은 당대 최고의 의사들과 함께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의학 DB를 구축한 것이다. 일종의 범국가 사업으로 추진한 '동의보감'은 당대뿐 아니라 후세에도 중요한 의학지침서가 되고 있다.
'동의보감'이 범국가적 사업이었다면 '자산어보'는 '몰락한 지식인'이 '지적 호기심'에서 자발적으로 서술한 책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만일 '자산어보'도 '동의보감'처럼 CEO(임금)가 직접 진두지휘했다면 어땠을까. 동해, 남해, 서해안의 어족에 대한 방대한 DB가 구축됐다면 아마 후대에 끼친 영향은 지금보다 더 대단했을 것이다.
'자산어보'와 '동의보감'은 콘텐츠의 가치만으로도 대단한 업적이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시사점이 있다. 그것은 데이터산업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중요한 논거가 된다는 점이다. 오늘날 데이터 시장은 날로 팽창 중이다. IDC에 따르면 전세계 데이터 시장은 2022년까지 26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통계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전세계 데이터 규모는 2010년 2ZB(제타바이트)에서 2025년 90배 이상 증가한 175ZB로 급증할 전망이다. 우리나라가 보유한 공공데이터도 2020년 12월 말 기준으로 5만5000여건이 공개됐다. 국내 데이터산업도 매년 10% 이상 성장 중이며, 2020년 기준으로 19조2736억원에 달한다.
데이터 활용가치는 기업 경쟁력도 좌우한다. 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이 데이터 기반의 기업과 전통산업 기업 중 상위 5대 기업을 비교한 자료에 따르면 데이터기업의 가치가 훨씬 높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처럼 데이터 시장이 '미래의 쌀'이라 불릴 만큼 중요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데이터에 대한 가치나 중요성에 대한 일반의 인식은 미흡한 수준이다. 인식이 부족하니 데이터화하는 수준도 낮을 수밖에 없고, 활용 역시 미미한 수준이다. 그나마 기업들은 고객 관련 데이터를 마케팅에 이용한 역사가 길다. 마케팅을 통한 수익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고객 데이터를 분석해야 한다.
하지만 공공영역에서의 DB화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한 가지 예로 심각한 교통정체를 해소하는 방안을 해결하고자 한다면 가장 많이 정체가 발생하는 지역에 대한 원천 데이터가 구축돼 있어야 한다. 원천 데이터를 근거로 특정 시간대, 특정 지역에 어떤 이유로 정체가 발생하는지에 대한 원인을 분석할 수 있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집값이 급등하는 주거지에 대한 디테일한 데이터가 축적된다면 해결책을 찾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적자생존'이란 의미가 본래의 뜻과 함께 '적어야 산다'는 뜻으로도 요즘 자주 회자된다. 성공한 사람은 메모를 잘하는 사람이다. 성공한 기업은 데이터를 잘 구축해 이를 잘 활용하는 기업이다. 마찬가지로 성공한 국가는 데이터 인프라가 잘 갖춰진 나라다. 200년 전 '자산어보'가 남긴 진짜 유산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