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독한 원장님, 모른척 할까요?

지영호 기자
2021.07.16 06:00

[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1시간 늦게 약국 문을 열었다가 같은 건물 병원 원장에게 무릎꿇고 사죄한 약사의 사연이 최근 화제다. 약국에 문이 닫혀있어 병원 환자들이 진료를 안받고 그냥 돌아가면서 병원에 피해가 발생했다는게 병원 원장의 주장이었다. 원장은 약국에 처방전을 내주지 않겠다고 협박하면서 몇천만원을 가져오면 용서하겠다고 했다.

약사가 원장에게 쩔쩔맨 이유는 약국이 병원에 기생하는 관계기 때문이다. 의사가 특정 약국에 약을 몰아줄 수도, 배제할 수도 있는 구조다. 심지어 이 병원은 다른 건물로 이전 계획이 있었다. 해당 약국 문을 연지 7개월만이다. 약사는 건물주와 8년 임대계약을 맺었다. 병원을 따라 약국을 옮기려고 하니 건물주는 감당하기 힘든 위약금을 내거나 높은 수준의 임대료를 낼 세입자를 구해놓고 떠나라고 했다. 병원 없는 건물에 비싼 임대료를 지불한 세입자는 거의 없다. 알고보니 건물주와 병원 원장은 남매지간이었다.

이 사연을 접한 누리꾼들은 크게 분노하고 있다. 이미 해당병원과 원장의 신상이 알려졌고 관련 블로그에는 누리꾼의 비판, 조롱글이 넘쳐나고 있다. "갑질순례 왔다"는 글에서부터 "병원에 방문해 환자갑질이 뭔지 보여주자"는 반응까지 뜨거운 상황이다.

병원의 의지에 따라 수입이 좌우되는 약국의 현실은 그동안 리베이트 문제로 불거져왔다. 병원이 있는 상가내 입점을 빌미로 수천만원이 드는 인테리어를 요구하거나 회식비를 내달라는 요구가 빈번한 것이 현실이다. 병원 임대료를 대신 납부하는 약국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식품업계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바로 분유시장이다. 모유수유 진흥정책에 따라 6개월 이하 신생아가 먹는 조제분유의 경우 TV광고나 무상제공 등이 제한돼 있다. 그러다보니 첫 분유를 먹이는 산부인과나 산후조리원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제약사들이 의사를 상대로 영업을 하는 것처럼 분유업체도 '첫 분유' 효과를 고려해 산부인과, 산후조리원 원장을 상대로 영업을 할 수 밖에 없는 처지다.

이 과정에서 분유 무상공급 뿐 아니라 인테리어 비용을 대거나 TV, 제습기 등을 선물하는 경우도 생긴다. 개원하는데 드는 돈을 빌려주기도 한다. 분유사업을 하는 회사 상당수가 사업영역에 대부업을 포함시키는 이유다.

이런 얼마전 일동후디스가 이런 활동으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4억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게 됐는데 사연을 들어보면 안타까운 부분이 있다. 마땅한 마케팅 수단이 없다보니 산부인과나 산후조리원과의 계약을 끊거나 위반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출산율 감소로 시장은 침체되고 있는데 마케팅 제한으로 손발이 묶여있는 상황에서 고육지책의 활동이 철퇴를 맞은 것이다.

그러는사이 해외에서도 인정하는 국내 분유는 외국산 분유에 밀려 점점 더 설 자리를 잃었다. 분유업체 상당수가 유아용 제품을 축소하고 성인용 시장으로 눈길을 돌리는 배경이다.

무상공급같은 불법행위에 대해 마땅히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리베이트 문제를 근절하기 위해선 주고받은 사람 모두에게 책임을 물리는게 효과적이다. "분유 리베이트와 관련해 산부인과나 산후조리원 원장이 처벌받은 전례를 본 적이 없다"는 업계의 얘기를 정책당국은 귀담을 필요가 있다. 독한 원장님을 방치하면 문제는 반복될게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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