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참여재판을 원하는 성범죄 피고인들을 항상 만류하곤 했다. 국민참여재판과 성범죄 고유의 특성 때문이다.
일반재판의 경우 개시부터 종료까지 적어도 몇 달이 걸리곤 한다. 그 기간에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는데 공방이 끝난 후 직업법관으로 이루어진 재판부는 바로 선고하는 것이 아니라 짧게는 2주, 길게는 수개월 동안 그간의 증거를 검토한 후에야 판결한다. 반면 일반국민 중 추첨으로 선발된 배심원이 유무죄를 판단하는 국민참여재판은 재판 자체가 당일에 끝나는 경우가 절대다수다. 재판날 제출된 증거가 허위증거라 하더라도 이를 다툴 시간은 당일뿐이다. 성범죄는 대체로 사람들의 이목이 없는 곳에서 발생한다. 피해자가 신고를 망설이다 뒤늦게 신고라도 한 경우나 강제추행 사건 같은 경우 정액 같은 생물학적 증거조차 없어 가해자와 피해자의 진술이 증거의 전부인 경우가 많다.
결국 성범죄를 국민참여재판에서 다루게 되면 가해자와 피해자의 주장 중 어떤 것이 더 신빙성이 있는지가 핵심이 되는 경우가 많다. 애초 유죄증거가 확실한 사건이라면 국민참여재판을 고민할 이유도 없다. 일반재판에서 빨리 혐의를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것이 피고인의 형량을 줄이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돌발진술이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반박을 당일에 마쳐야 하니 변호인으로선 미궁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느낌이 들곤 한다. 게다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도 고려해야 한다. 변호인은 사건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 아니다. 일단 피고인을 믿고 피고인의 처지를 대변하는 것이 변호인의 역할이라지만 만에 하나 피고인의 성폭력 가해가 사실이라면 피해사실을 여러 사람 앞에서 고백해야 하는 피해자의 처지는 어떻겠는가. 혐의를 다투며 피해자에게 2차 고통을 준 점은 그대로 피고인의 형량에 반영되기 때문에 더더욱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피고인이 국민참여재판을 선택했다면 무죄에 대한 확신이 상당했기 때문이 아닐까. 얼마 전 '국민참여재판에서 성범죄 무죄판결 비율이 높다'는 보도를 접하고 든 생각이다. 애초 국민참여재판 전체값은 무작위로 수집된 값이 아니다. 국민참여재판은 피고인의 별도 신청이 있을 때에만 열리는데 자신의 혐의를 다투는 피고인들 중에서도 무죄에 대한 확신이 상당한 피고인들이 이를 선택했을 테고 그러다 보니 무죄율이 높아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물론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일반 국민들로 이뤄진 배심원들의 성인지감수성이 낮고 이를 간파한 피고인들이 성범죄를 집요하게 국민참여재판으로 옮겨놨을 수도 있다. 이게 맞다면 이에 맞는 해법을 고민해야겠지만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일반 국민들의 성인지감수성이 직업법관보다 낮다는 점과 이것이 국민참여재판에서 성범죄의 높은 무죄율로 이어졌다는 점이 입증된 적은 없다. 더군다나 같은 수치를 두고 일반재판에서 성범죄 유죄율이 높다거나, 혹은 검찰이 성범죄에 대해 무리한 기소를 한다는 해석도 가능한데 이에 대한 검토 역시 이뤄진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 국민참여재판에서 성범죄 무죄율이 높은 것의 해법으로 배심원에 대한 성인지감수성 교육을 강제하는 내용의 입법이 추진된다고 한다. 성인지감수성 교육 그 자체를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가능하면 배심원뿐만 아니라 전국민에게 권하고 싶은 교육이다. 하지만 국민참여재판에서 성범죄 무죄율이 높은 현상에 대한 해법으로 이 법이 추진된다는 점은 의아하다. 명확한 원인분석이 있었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