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말 정부는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다주택자들에게 임대주택사업자로 등록하면 큰 혜택을 주겠다고 회유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다주택자는 회유의 대상이었다. 함께 잘해보자고 어르는 모양새였다.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데 있어 공공과 민간의 공생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이후에도 집값은 끝을 모르고 상승했다. 정부는 입장을 180도 바꾸었다. 다주택자에게 투기꾼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다주택자들은 왜 자신들이 투기꾼이냐며 억울해했다.
그 누구도 자신을 투기꾼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투기꾼을 잡으려면 투기에 대한 정의가 명확해야 한다. 그래야 규제에 대한 저항을 줄일 수 있다. 그렇다면 투자와 투기는 무엇이 다른가. 투자 전문가들은 '위험도'가 이 둘을 구분 짓는 기준이라고 이야기한다. 부동산으로 돈을 벌고자 하는 이가 있다고 치자. 그가 부동산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계산했다면, 그것은 투자다. 대부분 장기적 시각 하에 행해지는 행위다. 반면에 면밀한 검토도 없이 짧은 기간 내에 높은 큰 수익을 바란다면 그것은 투기다. 하지만 위험도를 기준으로 한 구분은 무언가 아쉬움이 남는다. 어느 정도의 위험이 진짜 위험한 것인지 그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일반인에게 투기꾼이 어떤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지를 물으면 "열심히 일하지 않고 큰돈을 버는 사람들"이라는 답을 가장 많이 내놓는다. 아쉽게도 이 또한 명쾌한 기준은 아니다. 근면하고 성실한 투기꾼도 분명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투기와 투자의 구분이 어려우니, 내가 하면 '투자' 남이 하면 '투기'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우리 사회에는 투자와 투기를 구분하는 기준이 있기는 하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단어를 보자. 예를 들어 주식을 사고 파는 행위를 투기라고 말하지 않는다. 3억 원의 여윳돈이 있는 길동씨를 가정해보자. 그가 3억 원의 주식을 사면, 우리나라의 기업 발전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길동씨가 3억 원을 주식에 투자해 3억 원(수익률 100퍼센트)을 벌면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노동의 대가치곤 너무 큰 액수가 아니냐고 비난하지 않는다. 하지만 길동씨가 똑같은 3억 원으로 부동산 두 채를 갭 투자한다면, 그는 주택 시장을 교란하고 무주택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투기꾼으로 간주된다. 아파트 분양권을 전매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분양권을 되파는 행위는 집값 거품을 부풀리게 한다. 전매 과정에서 프리미엄이 계속 붙기 때문에 마지막에 실제 거주할 목적으로 집을 사는 사람들의 부담만 늘어난다.
우리 사회가 생각하는 투기꾼에 대한 정의는 명확하다. 투기꾼이란 필수재를 이용해 돈을 벌면서 공익을 해치는 이들이다. 투자와 투자의 경계는 가르는 기준은 '행위의 파급효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행위가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지의 여부다. 이것이 투자자와 투기꾼을 가르는 기준이라면 다주택자들의 경우는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이들이 공익에 반하는 일을 하고 있는 걸까? 주택시장을 교란하고 있는 걸까? 이에 대해서는 다음 칼럼에서 이어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