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포크라테스와 나이팅게일 [광화문]

김명룡 바이오부장
2021.09.06 06:00

"나의 생애를 인류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합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

"나의 간호를 받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하여 헌신하겠습니다."(나이팅게일 선서)

널리 알려진대로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의사가, 나이팅게일 선서는 간호사가 되면서 해당 직업을 갖게되는 이들하는 일종의 맹세 같은 것이다.

의사나 간호사도 넓게 보면 직업 중 하나지만 다른 직업과 달리 '봉사'나 '헌신'을 유독 강조한다. 이는 이들이 생명을 다루는 일을 하기 때문에 갖춰야하는 덕목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의료인들이 단순히 돈을 벌어 생활을 하는 것이 목적인 직업인 보다 더 많은 보이지 않은 사회적 의무를 지게 된다는 것으로도 읽힌다. 그래서 이들의 삶이 다른 평범한 직업인들보다 더 고달픈 것인지도 모른다.

의사나 간호사가 하는 선서가 얼마나 중요한 지 피부에 와 닿는 순간은 일반적으로 우리의 상황이 가장 나쁠때다. 대체로 자신 혹은 가족이 질병에 시달리거나 불의의 사고로 몸을 다쳤을때가 돼서야 비로소 의료인의 소중함이나 필요성을 느끼기 때문이다.

의학드라마로만 접할 뿐이던 의사나 간호사들의 노고를 현장에서 직접 보게 되면 의료인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들 때가 많다. 넉넉하지 못한 건강보험 재정 탓에 우리의 건강보험 체계가 의료진의 희생을 전제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코로나19(COVID-19) 팬데믹(대유행) 상황에서 방역의 최전선에서 헌신하는 의료진들을 볼때면 존경의 마음이 들 정도다.

약 1년의 간격을 두고 의사와 간호사는 파업을 무기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시도에 나섰다. 감염병의 대유행이란 상황은 파업의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에게 최적의 타이밍이라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한 이들의 파업(혹은 시도)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간호사를 주축으로 한 보건의료노조의 파업시도엔 이들의 주장에는 국민들이 공감하는 기류가 컸다.

코로나19 방역현장에서 헌신해온 간호사들이 인력확충과 수당증액 그리고 보건의료인력 증원해달라고 주장한 것이 납득할만했다는 의미다. 장기적으로 국민건강을 위해선 보건의료인에 대한 처우개선이나 인력충원이 필요하다는 보건의료노조의 주장에 대해 국민적인 공감대도 형성됐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는 1년여전 의사인력 증원을 반대하며 진행됐던 의사들의 파업때와는 온도차가 확연히 다르다. 당시 의대정원 증원이나 공공의대 신설을 반대하는 의사들의 움직임을 국민들은 집단이기주의로 받아들였다. 지역간 의료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의사들이 의대증원을 반대하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국민이 보기에 직업인으로서 의사들의 정당한 주장일지 몰라도 생명을 다루는 이들에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물론 의료인들에게만 맹목적인 희생을 강요하자는 것은 아니다. 특정 직군이나 집단에 불리하거나 부당한 것이 있다면 이를 해결해야한다. 장기적으로 처우를 합당한 수준으로 개선해야 하고 이에 맞는 의료시스템도 구축해야 한다.

적어도 그들의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파업에 나서는 이유에 국민을 중심에 뒀으면 한다는 것이다. 이번에 당국이 보건의료노조와 합의하면서 공공의료 인력 확충을 약속했다. 의사단체는 벌써 월권적 합의를 했다고 반발하고 있다. 지난해 전공의 파업당시 정부와 의사단체는 의사인력 증원을 코로나 종식 이후에 재기하기로 합의했었다. 이 갈등의 불씨는 언젠가 커다란 불길로 번질 것이다.

의사들은 지난해 파업이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는 것을 통렬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무엇이 국민들을 자신들의 편으로 이끌지 고민해야 한다. 아직 우리 국민들은 의료진이 직업인이기 보다는 히포크라테스나 나이팅게일에 가깝기를 더 바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직 우리에겐 의료인은 그런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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