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은 법(法)을 만들 때 그 법에 영향을 받는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달라. 제발..."
지난달 31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안'(이하 탄소중립법)에 대한 재계의 하소연이다.
이 법에는 오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35% 이상 줄이도록 하는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명문화했다.
문제는 법 자체보다 그 법을 만들어가는 과정의 독단에 있다. 이는 탄소중립법 뿐만 아니라 언론중재법이나 기타 법들도 마찬가지다. 형식적 청문 과정만 있을뿐 진짜 대화를 통한 더 나은 단계로의 진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인간이 더 높은 단계로 가기 위해선 토론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테제(These: 최초의 명제, 正)가 정해지고 그 테제가 완전한 진리가 아니라면 그에 대한 안티테제(Antithese, 反)가 나오기 마련이다.
철학자 헤겔의 방식을 따르면 모순의 테제와 안티테제가 다투다보면 둘 다를 뛰어넘는 더 높은 단계의 진테제(synthese, 合)로의 합일이 이뤄진다. 이것이 인류 진화 과정이다. 탄소중립으로 가야하는 테제가 정해지면 그에 대한 안티테제들이 충돌하고 해법을 찾는 과정을 거친다.
우리가 숨을 쉬면 이산화탄소는 자연스럽게 배출될 수밖에 없다. 우리의 호흡을 통해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줄이기 위해 당장 숨을 쉬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포스코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하이닉스 등 대한민국 제조업도 마찬가지다. 탄소 기반 사회에서 폐로 숨을 쉬던 기업들이 아가미로 호흡을 하려면 진화의 시간이 필요하다.
기업들의 목소리는 제대로 듣지 않고 9년 내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고점 대비 35%를 줄이라는 법을 만든 것은 숨을 쉬지 말고 죽으라는 얘기다.
넷제로(Net Zero: 온실가스 순배출량 제로)가 피할 수 없는 길이라는 것을 모두 안다. 그렇다고 기업들이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에 밀려 무작정 낭떠러지로 뛰어내릴 수는 없다. 떨어지지 않고 건너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생존해야 한다.
서구 열강들은 자신들이 먼저 망친 지구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은채, 자신들의 준비가 끝나자 제조업 중심인 우리에게 통행세를 요구하고 있다. 이미 지구의 온도를 높여놓은 게 그들이 아니었던가. 우리 정부가 발벗고 나서 그 장단에 먼저 춤을 출 이유는 없다. 전략적 판단이 필요한 대목이다.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 길이 낭떠러지 위에 걸린 '흔들다리'라고 하더라도 우선 그 다리부터 만들어 놓고 "건너라"고 뒤에서 몰아붙여야 한다. 그 흔들다리라도 놓기 위해선 정부와 기업간 혹은 당사자간 대화가 필수다. 그런데 최근 입법 과정에선 그 필수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채 일방통행이다.
법(法)은 말 그대로 물(?: 물 수)이 흘러가듯(去: 갈 거)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집행돼야 한다. 만들어지는 과정이 일방적이지 않아야 진테제가 만들어질 수 있다. 어느 한쪽이 파도처럼 일방적으로 몰아치면 해안가의 집들은 모두 휩쓸려가고 만다.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탄소중립국으로서의 선도적인 위치를 가지는 의미는 우리 생존이 담보될 때다. 역사는 생존하는 자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우리가 탄소중립국으로 역사에 남기 위해선 우선 살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진솔한 대화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것이 역사 진화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