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R&D 성과, 사업화가 정답이다

이길우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원장
2021.12.10 02:10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이길우 부원장

기술패권 경쟁의 핵심요소로서 R&D(연구·개발)를 통한 지식재산 창출과 보호, 활용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기업과 국가 모두 세계 최고 기초·원천기술을 확보하지 않고는 생존을 담보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 세계 일류기업들은 저마다의 지식재산을 무기화해 강력한 시장 진입장벽을 구축하거나 경쟁기업을 공격하는 도구로 삼아 지속적인 경쟁우위 확보를 도모한다.

우리 정부도 새로운 성장을 위한 원동력을 확보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R&D 투자를 확대하고 R&D 주체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노력을 기울인다. 정부의 노력에 힘입어 논문, 특허의 정량지표는 매우 증가했다. SCIE 논문은 2010년 2만3915건에서 2019년 4만1919건으로, 같은 기간 특허는 2만4398건에서 5만9042건으로 늘었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평가한 2021년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과학인프라 2위, 기술인프라 17위다. 국내 논문의 피인용도도 세계 평균을 상회하는 등 연구성과의 질적 수준도 지속적으로 높아진다.

그러나 기술이전과 사업화 실적은 여전히 기대에 못 미친다. 최근 5년간(2015~2019년) 직접사업화 건수는 연평균 12.6% 증가했지만 기술이전 건수는 되레 7% 감소했다. 공공연구소의 기술료 수입은 2015년 1424억원에서 2019년 1419억원으로 정체됐다. 연구소기업 등의 창업건수는 2015년 57건에서 2019년 31건, 올해는 9건으로 감소했다는 국회 예산정책처의 지적이 뼈아프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소관 정부출연연구소의 예산은 약 5조원이다. 출연연의 연구성과를 사업화하기 위해서는 R&D 자체에 대한 투자 외에 많은 시간과 자금이 추가로 투자돼야 하는데 현재는 매우 부족하다. 기술창업에는 신속한 기술 수용성 확보가 필수인데 기술 보유자인 출연연 연구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동기와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적 장치도 부족하다. 창업생태계는 새로운 사업아이디어를 가진 창업자와 이를 실현할 기술력을 보유한 연구자, 이들의 혁신활동을 지원할 자본력 있는 투자자라는 3개의 다리를 가진 솥이다. 현재는 세 다리 모두 위태위태하다.

과학기술일자리진흥원이 실험실 창업환경 개선 정도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창업자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에 대한 인식이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났다. 규제완화와 인센티브 확대 등 제도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함을 뜻한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창업목표연구원제도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최근 5년간 출연연 창업기업 222곳 중 ETRI가 배출한 기업은 51곳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그 비결로 R&D 성과를 창업과 연계하기 위해 창업에 특화된 맞춤형 인재를 채용하고 창업 준비과정을 전폭 지원하는 등 창업에 마음껏 도전할 수 있는 문화를 꼽는다. 창업을 개인에 대한 평가와 연동하는 파격도 눈에 띈다.

기술 사업화로 가는 길에 흔히 '악마의 강'(devil's river) '죽음의 계곡'(valley of death) '다윈의 바다'(the Darwinian sea)가 있다고들 한다. 그만큼 우여곡절이 많고 지난한 길이라는 뜻일 것이다. R&D로 우수한 아이디어와 논문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업이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우수한 특허를 개발하고 이를 기술이전과 사업화로 연결하는 것은 더 어렵고 중요한 일이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이미 잘 갖춘 과학기술인프라와 R&D 투자 저력이 있다. 이제 이를 바탕으로 R&D 성과의 질적 수준을 끌어올리고 이를 중소·벤처기업에 이전하거나 사업화를 통해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 골프의 격언을 패러디하자면 '논문·특허는 쇼(show), 창업·사업화는 머니(money)'다. 이제 실리를 추구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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