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 ○○○ 때문인데[우보세]

김성휘 기자
2022.03.29 05:30

[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로이터=뉴스1) 장수영 기자 = 2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르비우에서 소방 관계자들이 러시아의 순항 미사일로 공격을 당한 연료 저장시설에서 불을 끄고 있다. ? 로이터=뉴스1

"신이시여, 어찌하여 우크라이나에 산맥을 펼쳐두지 않으셨나이까."

팀 마샬의 베스트셀러 '지리의 힘'은 러시아의 불안한 지정학적 조건으로 서문을 시작한다. 마샬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밤마다 저렇게 기도할지 모른다고 상상했다. 우크라이나에 험준한 산맥이 있었다면 그 서쪽 세력이 러시아로 진출할 의지를 접었을 것이다. 러시아로서도 기를 쓰고 완충지대를 넓혀야 하는 이유가 줄었을 것이다.

고(故)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전 국무장관은 별세 한 달 전인 지난달, 뉴욕타임스(NYT) 기고에서 전쟁을 예언하다시피 했다. 올브라이트는 친러시아 공화국 2곳의 독립을 승인하는 푸틴의 TV연설에 대해 "그의 연설이 전면 침공의 구실을 만들기 위한 것인지 걱정됐다"며 "그가 침공한다면 역사적 실수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정학(geopolitics)은 살아있다. 여기서 경제분야로 파생되는 이론이 지경학(geoeconomics)이다. 어떤 나라가 어떤 위치 어떤 조건에 있는지가 그 나라의 역사는 물론 경제번영 가능성, 외교 운신의 폭, 국내정치 특성까지 깊숙이 영향을 끼친다. 러시아는 반인도주의적 전쟁범죄국이 돼 버렸다. 푸틴이 독재적인 면모를 보인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푸틴이 미쳐서' 정상적인 판단을 못한다는 식으로 개인을 악마화해선 곤란하다. 정작 중요하게 봐야할 것을 놓친다. 면죄부를 주자는 게 아니다. 푸틴이 그런 판단을 한 바탕엔 지정학적 조건에 대한 인식과 전략이 있다는 뜻이다. 우려에서 현실이 된 우크라이나 사태는 한반도에도 서늘한 위기감을 준다.

첫째 동유럽 흑해 주변의 전쟁상황은 지구를 돌고돌아 우리의 밥상과 지갑 사정에 직격탄이 된다. 경유 가격이 국제시장에서 휘발유 가격을 앞지르고 있다. 주요 경유 수출국인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가 본격화했다. 수요국들이 대체공급국에 눈을 돌리면서 우리가 주로 수입하는 중동산 원유 가격도 뛰었다.

'유럽의 빵바구니' 우크라이나의 밀 수출이 타격을 입고 세계1위 비료 수출국인 러시아의 정치경제도 불안하다. 이는 연쇄적인 식량가격 상승과 식량공급 위기로 이어진다. 미국의 금리인상과 맞물리며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일 수 있다.

둘째 우크라이나의 운명을 조이는 지정학의 굴레는 한반도 생존의 법칙도 규정한다. 북한의 김정은은 핵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을 굳혔을 것이다. 북한은 지난 24일 발사체를 쏘아올렸다. 한국과 미국, 일본 등 정보당국들은 북한이 2017년 이후 한 번도 시험하지 않았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라고 판단했다.

우리나라의 대북 접근법과 한미동맹, 한중관계 등은 서로 얽히고설킨 채 정권마다 난제를 안겨준다. 전문가들의 전망도 어둡다. 팀 마샬은 "한반도라는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풀 수 없다. 그냥 관리만 할 일"이라고 냉정하게 말했다.

머니투데이 콘퍼런스 키플랫폼(4월 27~29일)은 최근 글로벌 경제 상황을 신(新) 지정학의 시대로 규정했다. 기술과 경제는 군사안보와 분리되지 않는다. 정부와 기업 등 정치경제 주체들이 지정학·지경학적 통찰력을 키울 때다.

김성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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